일본 내 안중근 의사 유해 기록·유품 반환 진전 기대감
박민식 장관 “한일관계 퀀텀 점프…일본 내 안 의사 사료 기록 요청”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 관계가 정상화하는 가운데 국가보훈부가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일본의 협조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오는 18일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3국 관계를 군사·안보·경제·교육·기술 분야 등으로 확대하는 한미일 정상회의가 열리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밀착하는 가운데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기록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일본의 협조로 교착 상태에 빠진 안 의사 유해발굴에 진전이 이뤄질지 주목된다.
◇박민식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유의미한 진전 끌어낼 것”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포럼을 통해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을 계기로 유의미한 진전을 끌어내겠다고 밝혔다. 안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초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후 형사재판을 받은 기록이 일본에 남아 있을 테니 관련 사료 확인에 일본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정부가) 여태까지 한번도 일본에 무게감 있게 요청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며 “지금 한일 관계가 새로운 ‘퀀텀 점프’를 하는 시대이니만큼 적극적으로 협조 요청을 하려고 한다. 주한 일본대사와도 이 문제로 만나보려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안중근 의사가 갖는 국제적인 중요성과 상징적 의미를 생각할 때 , 사형 당시 현재 형사재판 집행의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는 재편 과정을 정확하게 기록을 해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일본 정부에 대해 무게감 있게 기록 요청을 한 적은 저는 없다고 들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2008년 김양 처장도 “일본 유해 매장 관련기록과 사진 있을 것” 추정
박민식 장관에 앞서 13년 전 김양 국가보훈처장도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임을 강조한 바 있다. 김 처장은 2010년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은 기록을 중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안의사 유해와 관련한 기록이나 정보를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일본은 ‘광복되면 조국에 묻어달라’는 안의사 유언을 지킬 수 있도록 유해 매장 관련기록과 사진 등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정부는 2008년 3·4월 ‘한ㆍ중 안중근의사 유해발굴단’을 구성, 남북 합의와 중국의 협조로 랴오닝성 다롄(大連)시에서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이 이뤄졌지만 발굴에 실패한 뒤 유의미한 추가 시도는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당시 국가보훈처는 옛 만주지역 신문 성경시보(盛京時報) 1910년 3월 30일자에 나온 안 의사 순국 나흘 뒤 기사에서 “유해를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해야 한다는 게 뤼순(旅順) 감옥 규정이었고, 하얼빈산 소나무로 만든 관에 안 의사 유해를 안치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뤼순감옥 사형수 공동묘지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일본의 비공개 사료들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이와 관련, 김 처장은 “남의 나라 땅을 마냥 뒤질 수는 없다”며 “일본과 접촉해서 보다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유해발굴 작업에 나서야 과학적이고 접근에 수월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보훈처는 2008년 4월 외교채널을 통해 일본 정부에 안의사 유해관련 기록을 정식으로 요청했지만 일본은 관련 자료가 없다고 답변했다. 김 처장은 “그 자료가 영구비밀로 돼 있으니까 외교부를 통하더라도 그것이 어디 창고(문서고)에 있는지 모를 것”이라고 밝혔다.
◇김월배 교수 “일본 내 안중근 기록·유해 사료, 발굴 및 유묵 반환 노력” 필요
19년째 중국 일본 등지를 돌며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일해온 김월배 하얼빈이공대 교수는 “한중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하얼빈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립했다”며 “그처럼 윤석열 정부도 한일 관계가 좋은 시기에 안중근 기록사료 , 유해사료 및 일본에 산재한 안중근 의사 유묵 반환 같은 유의미한 실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을 위한 한일 협력이 정상회담 의제가 된다면 한일관계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역사적 전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보훈부는 현재로선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공동협력’ 문제가 정상회담 의제로 올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 내 안중근 의 유묵 반환 노력도 병행해야“
일본 내 안중근 의사 유해 기록 발굴 노력과 함께 일본에 있는 안 의사 유묵(遺墨) 반환 사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 의사 순국 93주기인 2003년 일본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 주택가의 로카(蘆花)공원(또는로카항춘원·蘆花恒春園) 내 로카념관에 안 의사 유묵 1점이 비치됐다. 안 의사의 휘호는 ‘빈이무첨 부이무교(貧而無諂 富而無驕·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재산이 많으면서도 교만하지 않다)’. 논어 학이편에 나오는 구절로 공자와 제자 자공의 대화에서 나온 구절이다.
이 글은 안 의사가 만주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기 직전인 1910년 3월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8자를 아래로 내리 쓰고 왼편에 경술(庚戌·1910년) 3월 뤼순 옥중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라고 적었으며 수장인(手掌人)을 찍었다.
이 유묵은 이 기념관 창고에 보관돼 있다. 이 글은 일본 개화기의 대표적 작가인 도쿠토미 겐지로(德富健次郞·필명 도쿠도미 로카)가 부인과 함께 1913년 여순 등 중국 동북부 지역을 여행하던 중 자신의 소설을 즐겨읽던 당시 뤼순초등학교 교사 히시다 마사모토(菱田正基)에게서 선물받은 것이다. 1937년 로카 서거 후 10주년 되던 해 부인으로부터 가옥, 부지, 그리고 묘지가 당시의 도쿄시에 기부됐으며 로카기념관은 1938년 개관했다. 안중근 의사 유묵은 도쿄시 소속 로카 기념관에서 관리한다.
김월배 교수는 ”인간의 수양에는 끝이 없다. 가난하면서도 아첨하지 않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는 것도 괜찮지만, 그런 수준에 머물지 말고 절차탁마(切磋琢磨)해서 가난하되 그 생활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아는 경지로 나아가라는 말“이라며 ”안중근 의사의 높은 수양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묵으로 반드시 정부가 안 의사 유품으로 반환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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