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들어간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
흔들리는 비구이위안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와 상하이증권거래소는 8월 14일부터 비구이위안과 계열사 채권 11종의 거래를 중단했다. 이들 채권은 9월 2일부터 내년 초까지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데 규모는 157억200만 위안(약 2조8700억 원)에 달한다. 비구이위안의 올해 상반기 순손실은 450억∼550억 위안(약 8조2000억∼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미상환 채권 보유액은 717억5602만 위안(약 13조1100억 원)이며 총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1조 4000억 위안(약 255조7800억 원)이다.비구이위안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출 기준 중국 1위 부동산개발업체다. 비구이위안이 무너지면 2021년 헝다그룹 파산 위기 때보다 충격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주요 부동산업체의 '도미노 도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당시 헝다그룹이 흔들리면서 신규 아파트 분양이 무기한 중단됐고 협력 업체들이 대금을 받지 못해 줄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비구이위안이 헝다그룹보다 4배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중국 부동산시장에 더 큰 충격을 안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시장이 붕괴되면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중국 부동산시장은 거래절벽 수준으로 침체된 상태다. 중국의 신규 주택 판매액 증가율은 4월 전년 대비 31.6% 증가하며 정점을 찍은 후 떨어지고 있다. 6월 28.1% 감소해 마이너스로 전환했고, 7월 33.1% 급감했다. 비구이위안의 디폴트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되면서 '중국판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디플레이션 진입한 중국
중국 대표 부동산신탁회사인 중룽국제신탁은 상하이증시 상장사인 진보홀딩스 등 3개사에 대해 만기 투자상품의 현금 지급을 연기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롄서'는 중룽국제신탁이 향후 현금 지급을 연기할 것으로 보이는 만기 투자상품 규모가 총 3500억 위안(약 63조9400억 원)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중룽국제신탁의 지급 연기는 회사 대주주인 자산관리회사 중즈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관련 있다. 이 그룹의 자산관리 규모는 1조 위안(약 182조7000억 원)에 달한다. 중신 등 주요 신탁회사도 지난해 말부터 원금·이자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리먼브라더스 사태는 세계 4위 투자은행으로 꼽히던 미국 리먼브라더스가 2008년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사건이다. 부실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파생상품 손실에서 비롯된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발생한 리먼브라더스 사태는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으로 기록되며 세계 금융시장에 타격을 줬다.
중국 부동산업체는 주로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신탁업계에서 자금을 조달해왔다. 중국 신탁업계는 은행 시스템이 아닌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운영돼 '그림자 금융'으로 불린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중국 전체 신탁의 13%인 2조8000억 위안(약 511조5600억 원)이 부동산 사업과 지방정부 부채에 노출돼 있어 디폴트 위험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동산발(發) 악재는 디플레이션에 진입한 중국 경제에 치명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내수와 수출, 투자 등 중국의 각종 경제지표는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3%로 전월(0.0%)보다 떨어졌다. 중국 CPI가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1년 2월(-0.2%) 이후 처음이다. CPI의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기 대비 -4.4%를 기록했다. 지난해 10월(-1.3%) 이후 10개월째 마이너스를 보인 것이다. CPI와 PPI가 동시에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2020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서방 언론들은 중국이 확실하게 디플레이션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D의 공포'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CPI와 PPI의 동시 하락이 디플레이션 진입의 신호라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도 "중국은 2021년 8월 마이너스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일본에 이어 처음으로 디플레이션을 보인 주요 20개국(G20) 국가"라고 지적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로빈 싱 중국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확실하게 디플레이션에 빠졌다"며 "이제 디플레이션이 얼마나 지속될지를 살펴볼 때"라고 강조했다.
중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서 7월 중국 소매판매 증가율도 전년 동기 대비 2.5%에 그쳤다. 시장 추정치(4.5%)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로, 6월(3.1%)에 이어 두 달 연속 한 자릿수 증가를 보였다. 소매판매는 내수경기 가늠자다. 내수 부진의 장기화 가능성이 드러난 셈이다.
줄어드는 외국인 투자
7월 산업생산도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나는 데 그치며 둔화세를 이어갔다. 중국 산업생산은 공장, 광산, 공공시설의 총생산량을 측정해 구한다. 고용 및 평균 소득의 선행지표로 활용되는 산업생산이 둔화됐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생산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는 의미다. 고용도 악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 청년(16~24세) 실업률은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는 일시적 구직 단념자 등을 포함한 실질실업률은 46.5%에 이른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중국 국가통계국은 7월 청년 실업률 통계를 발표하지 않았다.외국인 투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분기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동기 대비 87% 감소한 49억 달러(약 6조5400억 원)로 1998년 이후 25년 만에 최저치다. 이는 미국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 수출 통제 조치와 중국의 반(反)간첩법 개정 등 대외 개방 의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자금보다 유출되는 자금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성장 한계 다다라"
중국 경제는 앞으로 디플레이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일부 경제학자는 디플레이션과 성장 정체로 어려움을 겪은 일본과 현재의 중국이 비슷하다면서 중국이 '잃어버린 30년'을 겪은 일본식 장기불황 문턱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중국의 성장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중국이 과거 일본 같은 장기침체에 돌입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최고 싱크탱크 사회과학원의 류위휘 교수도 "중국의 현 상황은 장기침체가 시작된 30년 전 일본 같다"고 강조했다.일본은 1990년대 주식시장 및 부동산시장 붕괴로 기업과 가계가 부담스러운 부채를 갚기 위해 지출을 대폭 줄이면서 경기침체에 빠졌다. 이후 일본은 '수요 부진→물가하락→경기침체 악화'라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조니 매그너스 영국 옥스퍼드대 중국센터 연구원은 "앞으로 5~10년간 중국 경제성장률이 답보 상태에 머무를 것이라는 점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중국은 지난 10~20년 전처럼 세계경제의 동력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는 것이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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