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원 3인 미만 해외 출장, 심사 없이 맘대로…지방정부 ‘돈새는 구멍’ 436건 적발
투자유치위 위원이 자기 기업에 특례도
한 시의회는 시의원들이 해외 출장을 가려면 의장 산하 심사위원회의 사전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은 실제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시의회가 미리 ‘3인 미만의 의원이 출장을 할 경우엔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뒀기 때문이다. 이 조항 덕분에 시의원들은 단독으로 또는 다른 시의원 한 사람과 짝을 이뤄서 공무원 여러 명을 수행원으로 거느리고 해외 출장을 다닐 수 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17개 시·도의 자치법규를 대상으로 부패 영향 평가를 실시해, 이렇게 부패나 예산 낭비를 일으킬 수 있는 허점 436건을 찾아 관련 시·도와 시·도의회에 개선을 권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 출장은 경비는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되지만 내용은 외유성인 경우가 많아,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권익위가 각 시·도의회의 해외 출장 관련 규정을 살펴보니, 의원 1~2인이 출장을 가는 경우엔 사전 심사를 생략하도록 해 의원들의 ‘쪼개기 출장’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회 회기 중이거나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도 해외 출장을 갈 수 있게 돼 있는 시·도도 있었다. 해외 출장이 외유성이었거나 부적절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나더라도, 부당하게 받아간 출장비를 회수할 방법이 없게 돼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또 해외 출장을 가려는 의원이 심사위원으로 자신의 출장 계획을 심사할 수 있게 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권익위는 각 시·도의회에 불합리한 출장 심사 생략 기준을 삭제하고, 출장 제한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한편, 국외 출장 심사위원회 위원인 의원이 출장 당사자인 경우에는 자신의 출장 계획에 대한 심의에서 배제하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또 출장 목적이나 계획과 다르게 경비가 지출된 경우에는 출장을 다녀온 의원으로부터 출장비를 환수하고, 가산금도 5배까지 물어내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라고 권고했다.
지방의회 의원들이 결성하는 ‘연구단체’에 관한 규정들에서도 나랏돈이 새는 구멍이 발견됐다. 의원들은 여럿이 모여 만드는 연구단체에는 연구활동비가 지원된다. 또 연구단체 차원에서 외부 기관에 정책 연구 용역을 맡길 수도 있었다. 이런 활동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주민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러나 연구단체 다수는 의원들의 친목 단체에 불과하거나, 의원 개개인과 이해관계가 있는 특정 기관에 연구 용역을 몰아주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권익위가 관련 규정을 살펴보니, 연구단체가 추진하는 정책 연구 용역 심의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지 않거나, 용역을 맡기려는 기관과 사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도 용역 대상 기관 선정에 참여할 수 있게 돼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연구단체 활동 결과물을 의장에게 제출하거나 의회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는 조항이 없어, 연구 활동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연구활동비만 타먹을 수 있게 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시·도에서는 고문 공인회계사·세무사를 위촉하면서 이들에 대한 연임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아서, 특정인이 고문으로 무한정 재직하면서 고문료를 계속 지급받을 수 있게 돼 있었다. 민간 투자 유치 관련 사항을 심의하는 시·도 산하 투자유치위원회는 위원에 대한 구체적인 자격 기준이 없어, 시·도지사가 위원회를 입맛대로 구성할 수 있게 돼 있었다. 또 심의 안건에 사적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을 심의에서 배제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어, 위원이 자기 사업체에 투자 관련 특례를 줄 수 있게 돼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시·도나 산하 기관들이 보유할 수 있는 공용 차량 수 제한 규정은 차량 임차를 통해서 회피할 수 있게 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공용 차량을 10대까지 보유할 수 있는 기관이 별도로 차량 3대를 임차해 실질적으로 차량을 13대 보유하는 것이다. 또 공무원이나 지방공공기관 직원에 대한 포상 기준으 허술해, 기관장이 심사를 건너뛰고 특정인에게 임의로 포상을 줄 수 있게 돼 있는 경우, 성범죄나 음주운전 경력자에게도 포상을 줄 수 있게 돼 있는 경우도 발견됐다. 포상을 부정하게 받은 것이 드러나도 포상을 취소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는 경우도 확인됐다.
공공 건축물에 설치할 미술 작품을 심의하는 시·도 산하 미술작품설치심의위원회는 위원의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도 없고, 임기 동안 본인의 작품을 출품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도 없어서, 특정인이 위원직을 장기간 맡으면서 ‘셀프 심사’를 해 자기 작품을 예산으로 사들이게 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권익위는 이런 자치법규상의 허점들이 없어지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각 시·도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정승윤 권익위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이번 개선 권고가 지역의 고질적 토착 비리와 관행화된 부조리를 근절하는 계기가 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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