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에 얼룩진 입양…"150만명 넘는 미혼모가 아기를 뺏겼다"

이세원 2023. 8. 17.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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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아기 퍼가기 시대'…강제입양 피해 엄마의 美입양산업 폭로
페이스북에 실린 입양 관련 정보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966년 고교 3학년이던 한 소녀는 임신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고 대도시에 있는 유급 위탁 가정으로 보내졌다. 그는 같은 해 7월 딸을 출산했다.

소녀는 직접 키우고자 했으나 그의 딸은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입양기관으로 보내졌다.

그리워하던 딸과의 재회는 30년이 지난 1996년에서야 이뤄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딸은 2007년 8월 루게릭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인 캐런 윌슨-부터바우가 엄마로서 실제로 겪은 일이다.

1950∼1960년대 미국에서는 임신한 미혼 여성이 부터바우와 비슷한 일을 비일비재하게 당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아기 퍼가기 시대'는 미국 사회가 미혼모의 모성을 억압하고 어머니로서의 권리에 부당하게 개입한 역사에 대한 부터바우의 폭로이다.

책은 '아기 퍼가기 시대'(Baby Scoop Era)로 지칭되는 2차 대전 이후부터 1972년에 이뤄진 비공개 영아 입양 관행과 이 과정에서 미혼모가 겪은 일 등을 추적하고 미국 정부와 관련 당국이 임신한 백인 미혼 여성을 억압한 역사를 촘촘하게 엮어냈다.

아기 매매를 소재로 한 영화 '브로커' [CJ EN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아기 퍼가기 시대에 약 400만명이 입양 보내졌다. 이 가운데 약 200만명이 미혼모의 아기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여성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피임약이나 피임 도구를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임신과 출산에 관한 정보에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당시는 "새로운 성적 행동의 표준"이 형성되는 시기였으나 피임은 쉽지 않았고 사회는 혼전 임신 여성을 "문제 있는 여자애들"이라는 시각으로 규정했다.

미혼모는 편견에 시달렸다. 1940년대 무렵에는 심리적 결함이 있는 미혼 여성이 사생아를 임신한다는 관점이 등장했고, 심리학이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태어난 아기를 바로 입양 보내는 것이 미혼모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었다.

이 무렵 미혼모는 '정신 박약' 혹은 '성적으로 방종한 여자'로 여겨졌다.

2차 대전 후 입양 관계자들은 미혼모에게 아기를 포기하고 입양 보낼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입양 시장이 본격화한다.

강제 입양 촉진 법률 폐기 요구하는 호주 시위대 (2019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미혼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유한 부부들에게 보내던 입양 복지사들은 일종의 권력을 행사했다.

1955년에 한 사회복지사는 입양 결정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전지전능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으며 1960년대 무렵에는 입양 복지사가 실질적이고 자명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인식이었다.

1970년 초반의 입양 지침서는 미혼모의 친권 포기가 자발적이든 법적인 박탈이든 입양기관은 미혼모 자녀의 친권을 이전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했다.

출산한 미혼 여성은 입양 과정에서 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1969년에 임신한 코니의 사례를 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미혼이었고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 가족이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으면 입양을 피하기 어렵다고 인식했다.

일단 임신 사실을 철저히 숨겼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결국 미혼모 시설에 보내졌다. 수용소와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외출하려면 허가증이 필요했고 오후 8시 30분까지 복귀해야 했으며 10시가 되면 침대에서 조용히 누워 있어야 했다.

다음 해 3월 진통이 시작되자 그는 분만실로 옮겨졌고 양팔이 침대에 묶였다.

분만이 순탄하지 않자 의사는 집게로 아기를 꺼냈고 이것저것 묻는 코니에게 "닥쳐"라고 말했다. 아들이었다.

호주에서 열린 강제입양 사죄 행사 참석자 (2013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들을 안아보지도 못한 코니는 신생아실 유리 벽을 통해 집게 때문에 아기 얼굴에 생긴 멍을 목격한다.

코니는 11일 후 청소년 법정에서 판사로부터 '입양을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강요와 협박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무서웠고 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에 친권 포기 각서에 사인한다. 코니는 2주 후 아들이 "사랑이 넘치는 가정"으로 입양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시설에 수용된 미혼모는 정체성의 박탈과 굴욕을 경험했다.

어떤 시설은 어머니에게 아기를 보여주지 않거나 보여주는 것을 아예 금지했다. 아기를 볼 수는 있지만 젖을 먹이거나 우유를 먹여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미혼모도 있었다.

그 이유에 관해 한 미혼모는 "젖을 주거나 우유를 먹이면 입양 보내겠다는 마음을 바꿀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미국에서는 아기 퍼가기 시대에 150만명 이상이 강제 입양으로 아기를 뺏긴 것으로 추산된다. 문헌, 사회복지 담당자 및 어머니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미혼모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고 입양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런 편견을 부추겼다.

책 표지 이미지 (서울=연합뉴스) 저자인 캐런 윌슨-부터바우가 1966년에 낳은 아기를 입양 보내기 전에 안고 있는 모습이 책 표지에 실려 있다. [안토니아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일이 당시 서구 사회에 만연했다.

미국 외에도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아일랜드, 영국에서 미혼모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기와 이별해야 했다.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했다.

엄마에게서 아기를 빼앗는 불법 행위가 장기간 이어졌지만, 일반인들은 이를 잘 모른다. 책은 거대한 이권이 결부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진상 규명을 촉구한다.

"입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진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2000년 입양 산업은 연간 총 15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수천 명의 사람이 입양에서 나오는 수익과 기타 혜택에 의존하고 있다. (중략) 미국 정부는 아기 퍼가기 시대에 자행되었던 입양 관행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

안토니아스. 권희정 옮김. 320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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