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前 다케시마 적힌 말뚝 뽑고 독도 표지석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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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서도에 오르니 먹글씨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가 적힌 나무말뚝이 있었어요. 경찰이 말뚝을 뽑고, 우리가 산악회에서 가져간 화강암으로 만든 독도(獨島) 표지석을 박아 놨지요."
6·25전쟁 휴전 후인 1953년 10월 15일 한국산악회 회원 16명을 태운 해군함정 한 대가 독도에 상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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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울대생으로 측량 참가
독도 우리땅,거론할 필요없어”
“독도 서도에 오르니 먹글씨로 다케시마(竹島·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명칭)가 적힌 나무말뚝이 있었어요. 경찰이 말뚝을 뽑고, 우리가 산악회에서 가져간 화강암으로 만든 독도(獨島) 표지석을 박아 놨지요.”
6·25전쟁 휴전 후인 1953년 10월 15일 한국산악회 회원 16명을 태운 해군함정 한 대가 독도에 상륙했다. 당시 배를 탔던 김연덕(92·사진) 옹은 뱃멀미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눈앞에 나타난 독도를 보자 마음을 뺏겼다. 그는 지난 1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70년 전 기억 속 독도를 떠올리며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갔는데, 멋진 섬이었다”고 말했다.
광복 후 한반도에선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이란 인식이 강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1947년 한국산악회(당시 조선산악회)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자, 미 군정 과도정부와 국토구명 활동을 내세워 울릉도와 독도 학술조사를 추진했다.
1947년 8월 16∼28일까지 자연·생태환경, 민속 전반을 조사한 학술조사는 이후 2차(1952년 9월 17∼28일), 3차(1953년 10월 11∼17일) 조사까지 이어졌다. 이 중 3차 조사에선 독도 지도를 그리기 위한 측량작업을 했는데, 당시 서울대 재학생이었던 김 옹은 막내 대원으로 참가해 측량과 독도 표석 설치를 도왔다. 그는 “독도 동도에서 토목 측량에 쓰는 막대기를 들고 섬 꼭대기까지 올라갔다”며 “서도 앞 조그만 바위에는 물개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차와 배로 35시간이 넘게 걸렸던 험난한 독도 여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 옹은 “배로 스무 시간을 가는데 뱃멀미도 많이 하고, 막내라 짐도 다 옮기다 보니 완전히 뻗었다”고 말했다. 김 옹은 조사를 마친 직후 모교인 경기고(당시 경기중학교)에 기고한 ‘독도행각’에서 ‘아침, 점심 먹은 것을 어족에게 선물했다’고 쓰기도 했다.
김 옹은 이날 동북아역사재단이 산악회의 학술조사 성과를 한데 모아 서울 영등포 독도체험관에서 선보인 ‘1947,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를 가다’ 기획전에 참석해 “나이가 들어 더는 독도에 가지 못하는 게 아쉽다”면서 “지금 독도나 울릉도에 가보려는 사람들은 미리 공부하고 ‘정신 무장’한 상태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독도 영유권 갈등에 대해선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인 만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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