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포기하고 현금 쥐고 있겠다"…36세 광저우 부부의 변심, 왜?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3. 8. 1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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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에 사는 36세 주부 허잉 씨 부부. 계획대로였다면 올해 시내에 아파트를 보유한 '집주인'이 됐어야 했다. 두 살 짜리 아들, 그리고 기업 인사관리 업무를 하는 남편과 살고 있는 그는 내 집 마련을 위해 그간 꾸준히 저축을 해 왔다. 하지만 올해 남편의 수입이 갑자기 줄고 집값은 곤두박질쳤다. 허 씨 가족은 결국 주택 구입의 꿈을 접었다.

중국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신화=뉴시스
"아파트 구입보단 비상사태 대비해 현금 쥐어야겠어요"
허 씨는 17일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통한 인터뷰에서 "몇 년 동안 계약금을 내기 위해 월급을 쪼개 저축해 왔지만 올 들어 남편의 수입이 매우 불안정한 상황"이라며 "아파트 구입 계획을 연기했다"고 말했다.

중국 부동산 리스크는 일파만파다.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 碧桂園)과 위안양(시노오션, 遠洋) 디폴트(지급불능) 위기에서 시작된 충격파가 대형 부동산 신탁기업 중룽(中融)국제신탁 지급중단까지 옮겨붙는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의 부동산 위기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전날 전국 70개 도시 신규주택가격 추이를 발표했는데, 여지없이 꺾였다.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꾸준히 전년 동월 대비 낙폭을 줄이고 상승 반전까지 이뤘지만, 6월 0.0%에 이어 7월 -0.1%를 기록하며 다시 그래프가 우하향했다. 허 씨가 사는 광저우와 선전을 포함해 70개 도시 중 64개 도시에서 집값이 빠졌다.

집값이 떨어지고 경기가 위축되면 집을 사려는 사람이 줄어든다. 악순환이다. 허 씨는 "올해는 부동산을 사기보다는 무슨 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집을 사지 않고, 아이를 갖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허 씨의 말은 부동산가격 하락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혼주의와 딩크(Double Income No Kids, 결혼했지만 출산하지 않음)다. 중국에서 부동산발 경기침체와 인구 감소에 따른 경제동력 약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중국 온라인관영매체 펑파이(澎湃)는 전날 중국인구개발연구센터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1.09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전 세계 인구 1억명 이상 국가 중 가장 낮으며 반등할 가능성도 낮다고 지적했다. 올해 세계 인구 1위 대국 자리도 인도에 내줬다. 살인적 주거비와 경쟁적 업무환경 탓에 아이를 낳지 않는 한국·일본형 인구침체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

부양책 없이 5% 성장 힘들다…계속 흔들리는 中경제
이달 들어 발표된 지표는 악화일로다. 경제의 활기를 엿볼 수 있는 기준인 7월 소비자물가지수(-0.3%), 수출(-14.5%), 소매판매(예상대비 -2.0%p), 산업생산(예상대비 -0.7%p), 1~7월 부동산 개발투자(-8.5%), 1~7월 누적주택판매면적(-6.5%)은 물론 실업률(+0.1%p)까지 대부분 지표가 나빠졌다. 불안감이 높아지면 지출을 줄이는 게 당연하다. 중국 저축률이 반등하는 덴 다 이유가 있다.

직접적 유동성 공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중국 국영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회 차이팡 위원은 최근 "인민들의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기 위한 모든 수단을 써야 한다"고 강하게 촉구했다. 싱가포르국립대 드루 톰프슨 연구원도 블룸버그통신에 "경기 둔화는 사회 불안정성을 급격히 높인다"며 "중국공산당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방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내년 전망이 더 어둡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넣어준들 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파격적인 부양책 없이는 올해 5%대 국내총생산(GDP) 성장 달성이 어려울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CNBC는 16일(현지시간) 노무라 보고서를 인용, 중국이 올해 목표치인 5.0% 성장을 밑돌거라고 보도했다. UBS 투자은행도 보고서를 통해 같은 전망을 내놨다. UBS 왕타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약세는 올해 남은 기간 경제 모멘텀도 둔화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현지서는 그럼에도 정부가 당분간 대대적 부양책을 내지는 않을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외려 향후 2년간 민간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구조조정 기간을 삼고 기초체력 다지기에 나설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하는 위기 발생에 대한 컨틴전시플랜을 이미 세워놨다는 주장이 관가를 중심으로 흘러나온다.

지난 2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당과 행정부 고위급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공동부유를 촉진해 가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을 지난 15일 뒤늦게 공산당 이론지를 통해 공개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악화한 지표 감추기에 들어갔다. 지난 15일 발표 예정이었던 청년실업률을 발표하지 않은 게 대표적이다. 중국 정부가 지표를 감춘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블룸버그는 "중국 정부가 토지매매와 통화준비금, 채권거래, 코로나19 사망자 수, 학술지 발표 내용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관련 정보를 일부 공개 제한하거나 전면 발표 중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내 돈 내놔라" 이례적 시위 봇물…부동산은 파괴력 다르다
상해 소재 비구이위안 법인 건물./로이터=뉴스1
중국 정부는 상황이 통제하에 있다는 입장이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다르다.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위가 연이어지고 있다. 공산당 1당 시스템에 익숙한 중국 국민들이지만 사유재산에 대한 집착 또한 대표적 국민성이다. 지난 25년간 자산의 1순위로 여겨졌던 부동산 시장이 무너진다면 중국 국민들의 상실감도 클 수밖에 없다.

블룸버그는 중룽국제신탁 상품에 투자한 고객 20여명이 16일 베이징 본사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은 "만기가 지났는데 왜 원금과 이익금을 돌려주지 않느냐"며 "돈을 돌려줄 때까지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했다. 중룽신탁에 투자한 일부 중국인 고객들이 지역 지사를 방문해 항의하는 내용은 현지 온라인 등을 통해 전해졌지만 본사까지 몰려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 경찰은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주위에 더 많은 경력을 배치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중룽뿐 아니라 비구이위안의 베이징 퉁저우구 아파트 건설현장 앞에선 이미 100일 가까이 수분양자들의 천막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기업들의 도미노 디폴트로 국민들의 직접적인 행동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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