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지상주의 디스토피아[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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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아파트 103동'.
대지진으로 모든 건물과 아파트가 붕괴된 잿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버틴 아파트.
비록 아노미 상황이긴 하지만, 황궁아파트 103동의 안정된 시스템 안에 들어간 인간들은 높은 철조망을 치고 경계근무를 서면서 외부인의 침입을 막았다.
영화 속 명화(박보영)는 황궁아파트 103동을 나와 수평으로 누운 아파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주먹밥을 아무 조건 없이 건네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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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아파트 103동’. 대지진으로 모든 건물과 아파트가 붕괴된 잿더미 속에서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버틴 아파트. 이곳에서 생존한 인간들이 그려내는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감독)’를 최근 봤다. 이른바 ‘순살 아파트’가 사회 이슈가 된 요즘 “아파트는 저렇게 튼튼하게 지어야 돼”라는 우스개 감상평도 있었지만,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제로섬(zero sum)’의 상황이 만들어 내는 결과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정치 영화’ 같았다. 어수룩한 주인공 영탁(이병헌)이 인간의 본성을 점점 잃어가며 카리스마 있는 아파트의 지도자가 돼 가는 모습,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아파트 입주민들이 투표를 통해 이른바 ‘바퀴벌레’로 표현되는 숨어든 외부인을 쫓아내고 죽이는 배타성과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 여론 형성 과정,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살인과 약탈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목표지향주의적 광경들. 모두 우리 편만 챙기는 정치, 집단이기주의에만 몰두한 사회의 모습과 그대로 오버랩 됐다.
영화 속 아파트는 생존과 정치의 공간이었다. 비록 아노미 상황이긴 하지만, 황궁아파트 103동의 안정된 시스템 안에 들어간 인간들은 높은 철조망을 치고 경계근무를 서면서 외부인의 침입을 막았다. 여기에 ‘공생’이라는 단어가 발붙일 틈은 없다. 우리의 현실도 똑같다. 사람들은 안정된 시스템으로 진입하려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섞이지 않으려고 높은 장막을 친다. 이게 확장되면 ‘팬덤’이 되고 정치 지도자는 여기에 편승한다.
민심의 차가운 평가를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의 혁신안을 닥치고 엄호하며 높은 철조망을 친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의 14일 최고위원회의 모습이 그랬다. 혁신안은 대의원제를 폐지하고 당원이면 누구나 1인 1표를 행사해 당 대표를 뽑자는 명목상 ‘당원 직선제’지만, 실제로는 ‘개딸 직선제’나 다름없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혁신안을 ‘민주항쟁’에 빗댔고, 혁신안 거부를 ‘집단항명’이라고 규정했다. 박찬대·장경태 등 친명계 최고위원들이 일제히 거들었다. 혁신위가 언급한 ‘다선 용퇴론’은 영화 속 바퀴벌레 잡기 같은 비명계 솎아내기로도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판했다고 개딸 등 야권 강성 지지층이 최근 작가 김훈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김 작가가 최근 서이초 교사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한 일간지에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을 공교육 붕괴의 요인으로 지적하면서 조 전 장관을 ‘내 새끼 지상주의’를 권력적으로 완성한 인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김 작가의 책을 불태우겠다는 등 원색적 비난을 퍼부은 이들은 ‘내 편 지상주의자’들이다.
영화 속 명화(박보영)는 황궁아파트 103동을 나와 수평으로 누운 아파트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주먹밥을 아무 조건 없이 건네받는다. 높이 솟은 수직적 위계의 형상으로 우리 편만 챙기는 정치의 공간과 시스템이 작용하지 않는 새로운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다. 편 가르기만 일삼는 정치가 없는 공간이 새로운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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