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범죄 ‘예방적 개입’도 중요하다[시평]

2023. 8. 1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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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묻지 마 범죄에다 학부모 갑질
무관용 원칙 따른 처벌은 기본
예방정책 없인 실효성 불확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만큼
책임 일깨우는 아동교육 중요
복지 중심의 비행예방법 필요

초등생의 교사폭행, 학부모 갑질 민원, 묻지 마 범죄 사건으로 사회 불안과 분노가 증폭됐다. 학생인권조례 개정, 아동학대 교원면책, 정신질환자 사법입원 등 대응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는 사회문제의 원인을 차분히 분석하기보다는 ‘잘못을 범한 자’를 찾아 응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사회정책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잘못한 개인을 찾도록 유인한다. 가해자도 이를 학습한다. 사회교육적 효과가 있는 셈이다. ‘술 때문에’ ‘정신질환 때문에’ ‘내 아이 피해를 막으려’ 등 잘못을 외부로 돌린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의 노력 대신 상호 비난에 익숙해진다. ‘공동체 복원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각자도생·남 탓’의 사회문화가 자리 잡는다.

인식의 오류가 없어야 제대로 된 사회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가해자를 무관용의 원칙으로 처벌하는 것은 인권 존중의 사회문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피해 보상, 음주,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형을 면제·유예하거나 약한 처벌을 하면 피해자를 불안하게 한다. 가해자의 재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범죄자의 ‘인권’을 명목으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돼선 안 된다.

둘째, 인권은 특권이 아니다. 인권은 의무와 책임 이행 없이는 증진될 수 없다. 아동은 가정에서는 부모를 존중해야 하고, 가사를 도울 책임이 있다. 학교에서는 친구를 존중해야 하고 학급 일을 도와야 한다. 부모와 교사도 아동을 존중해야 한다. 부모의 징계권조차 없어진 오늘날 불명확한 개념인 ‘교권 확립’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셋째, 법무부 발표처럼 정신질환이 있는 범죄자에 대한 법원 개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들의 ‘치료’를 지원하고자 1989년 약물법원을 만들었고, 현재 3200여 개의 문제해결법원이 활동하고 있다. 영국도 중독·정신질환 있는 비범죄 아동학대 행위자의 치료를 지원하는 법원이 30여 군데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 어디서도 정신질환자를 사법입원시켜 범죄를 예방하려는 형사정책을 채택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하고, 또 시급히 보완할 점은 권리 존중과 책임 이행의 사회문화 확립이다. 삶의 경험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지혜를 알려준다. 아동정책이 그만큼 중요하다.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은 아동에게 장애·질환이 있거나 정서·행동 문제가 있을 때인데, 선진국의 해법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모가 교사에게 폭언을 하면 그 자체로 아동학대로 의심받는다. 그런 부모 밑에서 아이가 제대로 자랄 리 없기 때문이다.

상담과 교육을 통한 행동교정을 약속하지 않으면 법원이 개입해 상담·교육을 받게 한다. 심하면 아동을 분리해 지방자치단체가 보호한다. 그 비용은 부모가 부담한다. 정서·행동 문제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 부모의 방임이 의심된다. 부모와 합의해 가정방문 지도, 그룹 활동, 아동 개별지도 등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애가 있는 아동에 대해서는 특별 지원을 통해 통합 교육이 가능하게 한다. 부모의 통제를 벗어난 아동이 폭력적이거나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특별기관에 입소시켜 치유 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두 범죄가 아니라, 아동의 행동 문제에 대한 개입이자 인권보호를 위한 것이다. 이런 정책으로 은둔형 외톨이나 가출 청소년 문제를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

모두 ‘예방’을 위한 복지 지원이고 형사사건이 아니어서 법원 판결이 필요하더라도 엄격한 입증이 요구되지 않는다. 변호사가 개입해서 시간 끌기를 할 수 없다. 국민 모두 아동 관련 문제를 학교·가정·지역사회가 협업해 해결하려는 정책에 일찍부터 익숙해져 있어서 협업적 사회문제 해결이 사회문화가 된다. 미국은 범죄 아닌 아동 일탈에 학교·지자체·경찰이 개입하는 ‘청소년사법 및 비행예방법’, 아동학대와 방임에 대해 ‘아동학대예방 및 치료법’을 통해, 그리고 독일은 ‘아동청소년지원법’, 영국은 ‘아동법’을 통해 이런 정책을 구현한다.

처벌 중심주의만으로는 유사한 문제가 계속해서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회복’을 위한 예방적·복지적 사회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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