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네 번째 검찰 출석 "기꺼이 시지프스 되겠다"

강지수 2023. 8. 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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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 사익도 취한 적 없어" 혐의 부인
"비회기에 영장청구해라" 檢 강력 비판
30쪽 진술서로 갈음... 0시 전 종료 예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백현동 개발 비리 의혹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기 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한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백현동 개발 비리 사건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그는 검찰 조사 전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다. 굽힘 없이 소명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바위를 정상에 올려 놓으면 떨어지고 또 올려 놓으면 다시 떨어지는, 영원한 형벌을 받는 상황을 본인의 처지에 빗댄 것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5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 삼거리에 도착했다. 그는 차량에서 내린 후 설치된 무대에 올라 10분 간 A4 용지 2쪽 분량의 입장문을 읽어내려갔다. 그를 기다리던 지지자 300여 명은 일제히 “이재명”을 연호했다.

이 대표는 우선 “단 한 푼의 사익도 취한 적이 없다”며 적용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어 “티끌만한 부정이라도 있었다면 십여 년에 걸친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권력의 탄압으로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조작수사이자 정치공작”이라며 검찰 수사를 재차 비판했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조작수사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면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면서도 “회기 중 영장청구로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정치꼼수는 포기하라”고 소리쳤다.

윤석열 정부를 향해서도 바짝 날을 세웠다.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의 이 무도한 폭력과 억압도 반드시 심판받고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대표는 경기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2014~2015년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과정에서 민간업자에 각종 특혜를 몰아줘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를 받는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이날 오전 10시 40분쯤부터 이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차담회(티타임) 없이 시작된 조사는 이 대표 측이 심야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0시 전에 끝나게 된다. 이 대표 측은 30쪽 분량으로 준비한 진술서로 답변을 갈음할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이에 맞서 250쪽 분량의 질문지를 준비해 이 대표를 강도 높게 추궁한다는 계획이다.

이재명 대표 입장문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벌써 네 번째 소환입니다.
저를 희생제물 삼아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정치 실패를 덮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없는 죄를 조작해 뒤집어씌우는 국가폭력, 정치검찰의 공작 수사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를 향한 무자비한 탄압은 이미 예정됐던 것이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죄 없는 국민이 겪는 절망과 고통이 참으로 큽니다.

수십 수백 명이 대책 없이 죽어 나가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불안한 나라,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 통치로 두려움이 만연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자유의 이름으로 각자도생이 강요되는 벼랑 끝 사회에서
국민들은 절망적인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있습니다.

뉴스를 안 보는 것이 일상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체념,
눈떠보니 후진국이라는 한탄소리에 차마 고개를 들기 어렵습니다.
이 모든 일이 제 부족함 때문이라는 자책감이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합니다.
역사는 더디지만 전진했고, 강물은 굽이쳐도 바다로 갑니다.
권력이 영원할 것 같지만, 화무도 십일홍이고, 달도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진실은 드러나고, 국민이 승리한 것이 역사입니다.
왕정 시대 왕들조차 백성을 두려워했고, 백성의 힘으로 왕정을 뒤집었던 것처럼,
국민을 무시하고 억압한 권력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집단지성체로 진화해,
세계사에 유례없는 무혈촛불혁명을 성취한 우리 국민입니다. 
당장은 폭력과 억압에 굴복하고 두려움에 떨지 몰라도 
강물을 바다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힘처럼 반드시 떨쳐 일어나 국민이 주인인 나라로 되돌려놓을 것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기억하십시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습니다.
정권의 이 무도한 폭력과 억압도 반드시 심판받고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정치는 권력자의 욕망 수단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를 위한 헌신이어야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저는 권력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권한을 원했습니다.
저에게 공직은 지위나 명예가 아니라 책임과 소명이었습니다.
위임받은 권한은 오직 주권자를 위해 사용했고,
단 한 푼의 사익도 취한 적이 없습니다.

티끌만 한 부정이라도 있었다면 
십여 년에 걸친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권력의 탄압으로 
이미 가루가 되어 사라졌을 것입니다.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굽힘 없이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안개가 걷히면 실상은 드러납니다.
가리고 또 가려도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소환조사, 열 번 아니라 백 번이라도 떳떳이 응하겠습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면 제 발로 출석해서 심사받겠습니다.
저를 위한 국회는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검찰은 정치가 아니라 수사를 해야 합니다.
회기 중 영장청구로 분열과 갈등을 노리는 정치꼼수는 포기하십시오.
무도한 윤석열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에 당당히 맞서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써 만든 선진강국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우리 속에 널리 퍼진 두려움과 무력감을 투쟁의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 
공포통치 종식과 민주정치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제물이 되겠습니다.

누군가의 희생 위에 역사와 민주주의가 전진했던 것처럼
쓰러진 저를 디딤돌 삼아 더 많은 이들이 어깨 걸고 전진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국민과 국가에 대한 기여 아니겠습니까?

검사독재정권은 저를 죽이는 것이 필생의 과제겠지만 
저의 사명은 오직 민생입니다.
이재명은 죽여도 민생은 살리십시오.

아무리 이재명을 소환해도 정권의 무능과 실정은 가릴 수 없습니다.
국민을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권의 국가폭력에 맞서 
흔들림 없이 국민과 함께하겠습니다. 
소명을 다하는 날까지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 8. 17.
이재명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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