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일도 없으면서" 진상 학부모에…"교사만큼 힘들다" 악몽
학교 1차 민원은 교육공무직이 응대
“교육부 추진 교권강화 방안, 공무직만 감정 쓰레기통 될 가능성” 지적
교무실무사 A씨는 10년 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증명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는 민원인을 만나며 악몽이 시작됐다. 해당 민원인은 ‘민원 폭탄’을 투하했고, 자료를 이용해 이유 없는 소송과 고소를 반복했다. 한글도 못 읽는다는 식의 모욕과 폭언은 기본이었다. 경찰서, 검찰, 법원에 수시로 출석하면서 A씨의 삶은 망가져 갔다.
참다못한 A씨는 무고죄로 민원인을 역고소했고 결국 민원인은 대법원에서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이 민원인은 출소 후에도 고소·고발을 이어오고 있다. A씨는 ”산재 인정까지 받았지만 모든 피해는 오롯이 개인이 감당하고 있다”며 “교육지원청과 도 교육청도 이를 알면서 법적 근거가 없다며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경기지역 학교 도서관 사서 김 모 씨는 학부모들로부터 ‘심부름꾼’ 대우받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준비물을 두고 등교하면 ‘만만한’ 도서관을 찾아 “쉬는 시간에 물건을 전달해 달라”고 요구하는 일은 비일비재다. 도서관은 특성상 쉬는 시간이 가장 바쁜데도 말이다.
그밖에 자기 아이 수행평가를 위해 인기 있는 책을 미리 빼달라는 부탁을 거부했다가 “하는 일도 없는 주제에~”로 시작되는 폭언도 수차례 들었다. “도서관에서 우리 애 책 보고 있을 텐데 학원 버스 시간 맞춰 태워주세요” “도시락 싸서 보냈으니 점심 좀 먹여주세요”라는 요구를 거부했다가 ‘불친절한 사서’라는 낙인 찍혔다.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악성민원 등 인권침해의 가장 주요 행위자는 학부모로 81.1%를 차지했다. 그 외의 학생 가족이 8.5%. 학생은 2.4%였다. 지역 주민 등 기타 외부인도 8%에 달했다. 교사와 달리 교육공무직은 지역 주민의 민원도 받는 점이 다르다는 게 교육공무직본부의 설명이다. 악성 민원의 주된 유형은 학생 지도 관련이 63.5%, 행장 사무가 15.2%로 조사됐다. 스트레스 정도를 묻자 매우 높다가 52.3%, 높다가 39%로 나타났다.
교무실과 행정실에서 1차 민원 응대를 도맡았던 교무·행정 실무사일수록 악성 민원에 노출돼봤다는 응답률이 높았으며, 학생을 직접 돌보는 돌봄전담사와 특수교육지도사의 응답률도 낮지 않았다.
교육공무직본부는 “학부모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교수학습이나 평가, 생활지도의 책임자인 교사에 비해 악성민원 피해 경험 비율이 높지는 않으나, 학생을 대면하지 않는 직종도 포함했음에도 절반을 훌쩍 넘는 61.4%가 악성민원 경험을 밝히고 있다”며 “교육공무직 상당수가 이미 악성 민원에 노출돼 고충을 겪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외의 악성민원 실태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14일 교육부의 발표 이후 교육공무직본부가 긴급하게 수집한 400개의 사례에 따르면 △소득 높은 데도 “우유 무상 지원해 달라”는 학부모 △개학 전에 전화해서 막무가내로 담임을 알려달라는 사례 △술 먹고 전화해서 횡설수설 욕하면서 자녀 바꿔달라는 학부모 △담임과 연결이 안 되니 교육 실무사에게 협박과 화풀이를 하는 부모 △끝이 뽀족한 가위를 내밀며 “내 아이도 친구한테 이렇게 당했다”며 항의하는 학부모 △공공기관 실내온도 맞춰 24도로 에어콘 설정했는데 “너 같으면 그 온도에 공부하고 싶겠냐” 막말하는 학부모 △전화 통화 녹음하여 본인들한테 맞게 짜집기 편집하는 민원인 등이 등장했다.
이날 증언에 나선 한 교무실무사는 “담임들은 모두 수업 중이라 웬만하면 교무실에서 민원을 응대한다”며 “이 과정에서 감정 노동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정작 전화로 응대하면 "교사가 아닌 사람과 통화하고 싶지 않다"는 차별적 막말을 내뱉는 민원인도 있었다. 한 영양사는 "편식이 심한 자녀에게 맛있는 걸 내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고, 아무 때나 급식소에 들러 지적하고 가는 학부모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서이초 사건으로 교육부가 교권 회복 및 보호강화 종합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교육공무직이 실질적인 전담자가 되면서 독박민원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교육부는 민원대응팀 운영, 학교 출입 관리 등 ‘학부모-교원 소통관계 개선’ 방안 등이 담긴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이에 대해 증언에 나선 한 교육공무직 근로자는 “서이초 사건은 안타깝지만, 교사 교권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학부모 민원을 우리 교무행정사들에게 떠넘기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공무직본부도 “교사와 학생·학부모 간 교수학습, 생활지도 등 교육과정관련 민원 처리가 불가능해지면서, 답답해진 학부모를 오히려 악성민원으로 만들 수도 있다”며 “어떤 식이든 시스템으로 거르지 않은 1차 민원의 대상은 교육공무직이 될 것이며 직무와 무관한 감정쓰레기통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원처리 절차를 통해 학교 출입관리를 강화한다는 방안도 결국 교육공무직 역할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절차의 불편함이 발생하면 교육공무직은 또다시 악성 민원을 응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악성민원과 교권추락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본부는 “교사든 교육공무직이든 하위직 개인이 떠맡아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항의성 민원 응대 시스템은 가급적 학교 이전에 상급 기관에서부터 처리(교육지원청, 교육청)해야 한다”며 “불가피하게 사람이 나서야 하는 단계에선 교장, 교감, 교무부장 등 관리자 중심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원 업무로 인해 소송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며, 소송 발생 시 소송 지원방안 마련해야 한다”라고도 주문했다.
교육공무직본부는 교육부의 민원대응팀 운영에 대한 집중 재검토를 요구하고, 교육부 최종 확정대책 발효 이후 17개 시도교육청과 지역별 협의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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