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라면 4년 후에도 5전 전패”…韓여자야구 베테랑들의 쓴소리 [야구월드컵]
이대론 4년 뒤에도 결과 같을 것
리틀야구 경험한 어린 선수 희망적
‘실업팀’ 창단 필요성 역설
[스포츠서울 | 선더베이(캐나다)=황혜정기자] “이대로라면 4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달라지지 않는다면 5전 전패죠.”
마지막 경기인 캐나다전을 앞두고 두 베테랑을 불러 앉혀 물었다. 이번 대회 전패를 기록 중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외야수 신누리(36)와 투수 김보미(34)는 올해 대표팀 선수단 중 직전 대회인 ‘2018년 여자야구 월드컵’(미국 플로리다 개최)에도 참가한 유이한 선수다. 당시에도 1승 4패로 세계의 벽을 여실히 느꼈는데, 올해는 더 크게 느끼는 중이란다.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대한민국 여자야구는 발전하지 못했다. 5년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국, 호주 같은 강팀에 콜드게임 패 수모를 당했다. 대표팀은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2024 여자야구 월드컵(WBSC)’ 예선에서 5전 전패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외야수 신누리는 “이게 현실인 것 같다. 아무리 기업들에서 이번에 후원을 많이 해주시고, 스타 출신 감독·코치진이 합류해 많이 도와주셨지만, 일주일에 2번 주말 훈련만 가지고는 세계와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신누리는 “일주일 합숙훈련하고 이래도 그 잠깐이잖나. 선수들이 따로 개인 훈련은 정말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야구는 팀 운동이라 또 한계가 있다. 실업팀이 생기지 않는 이상 4년 뒤에도 현실은 같을 거다”라고 덧붙였다.
투수 김보미는 “참 속상하다. (신)누리 언니가 하는 이야기가 다 맞다. 그래도 조금 희망적으로 생각해보자면, 2018년 월드컵 당시엔 대표팀 연령층이 높았다. 그런데 지금은 리틀야구를 했던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연령층이 낮아졌다”고 했다.
여자야구 대표팀은 평균연령을 2018년 29.3세에서 2023년 25.35세로 평균연령을 4살이나 낮췄다. 실제로 올해 대표팀이 ‘신구조화’가 잘 된 것으로 평가된다. 신누리와 김보미 등 30대 초중반 선수들을 주축으로 10대 후반~20대 초반 선수들이 뒤를 받쳤다. 대표팀 에이스로 꼽히는 투수 박민성(20)과 이지숙(22), 내야수 박주아(19),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박소연(22) 등이 4년 뒤에도 여전히 20대 초반~중반에 불과하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학생들과 리틀야구·유소년야구팀에서 뛰며 기본기를 잘 다져온 외야수 양서진, 투수 곽민정(이상 16)이 언니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기량으로 향후를 기대하게 했다.
김보미는 “그때와 이번을 비교해 경기력이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리틀야구를 경험한 어린 선수들이 많이 들어오며 세대교체가 잘 됐다. 2018년 땐 김라경(23) 한 명 뿐이었는데, 올해는 5명이다. 이 친구들이 4년 뒤에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성장한다면 대표팀은 한층 강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보미는 “물론 우리 대표팀이 아직 부족한 게 참 많다. 주 2회 말고 연습을 더 많이 해야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분명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하고는 있다. 2018년도에 미국에 안타 한 개만 뽑아냈는데, 이번엔 3개를 쳐냈다. 저번에 볼 수 없던 호수비도 많이 나왔다. 가시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누리와 김보미는 어린 선수들의 빠른 성장이 반갑다고 했다. 이들은 “(양)서진이, (곽)민정이 같은 어린 친구들과 캐치볼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대견하다. 이 친구들이 경험치를 먹고 큰다면 분명 우리도 향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지속성도 이야기했다. 지난 3년간 여자야구 대표팀은 코칭스태프가 계속 바뀌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가 개인사정 등의 이유로 사퇴했다. 그러자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은 급하게 LG·롯데 사령탑을 역임한 양상문 감독에게 부탁을 했고, 양 감독이 흔쾌히 수락하며 정근우, 이동현, 허일상 코치와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일본, 홍콩의 경우 한 명의 지도자가 대표팀을 연속성 있게 오랜기간 이끈다. 선수단은 이번 대회에서 만난 홍콩 감독을 보고 “지난번 대회에도 있었던 감독”이라며 놀라워했다. 미국, 일본은 자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출신 선수를 코치부터 시작해 감독으로 키워낸다. 그 결과 현재 미국과 일본만이 여성 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신누리와 김보미는 “이번에 스타 출신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오셔서 물론 좋았지만, 우리 여자야구 대표팀이 연속성 있게 한 방향으로 가려면 4년간 한 지도자 밑에서 일관되게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예를 들어 한 어린 선수가 잠재력은 넘치는데 경험이 부족해 실전경기에서 부진했다 하자. 그런데 단기 감독이라면 당장의 성적을 위해 이 친구를 키우지 않을 것이다. 길게 보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주기적인 A매치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한국여자야구연맹 황정희 회장은 “일본, 대만, 중국, 홍콩, 한국까지 동아시아 5개국이 교류전을 하려고 논의는 하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으나 교류전의 필요성은 모두가 느끼고 있다”고 했다.
신누리와 김보미는 “주기적인 교류전을 통해 계속해서 외국 대표팀과 경쟁하며 실력을 확인하는 것은 반길 일”이라며 “아무래도 국내 남자 야구팀들과 연습경기는 긴장감이 떨어진다. 코로나19펜데믹 직전까지 주기적으로 열렸던 ‘LG컵’처럼 외국 선수들과 겨뤄볼 장이 지속적으로 생긴다면 대표팀 기량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랐다.
결국은 시스템의 문제다. 여자야구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국제대회 결과도 바뀐다. 더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하고, 국가주도적 노력으로 실업팀도 창단돼야한다. 대표팀 양상문 감독 역시 “국가 차원에서 여자야구에 신경을 조금 더 써주셔서 실업팀이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라고 한 이유다.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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