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뒤 청소부로 돌아간 ‘슈가맨’, 그리고 피프티 피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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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이 떠났다.
잊혀진 가수를 소환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2012) 속 실존 인물 식스토 로드리게스 얘기다.
'서칭 포 슈가맨'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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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맨’이 떠났다. 잊혀진 가수를 소환하는 음악 예능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2012) 속 실존 인물 식스토 로드리게스 얘기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로드리게스가 지난 8일(현지시각) 81살 나이에 별세했다고 공식 누리집이 밝혔다.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전해지는데,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칭 포 슈가맨’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를 펼쳐낸다. 영화는 로드리게스의 데뷔 시점부터 시작한다. 디트로이트 뒷골목 허름한 클럽에서 노래하던 로드리게스는 음반 제작자 눈에 띄어 첫 앨범을 내게 된다. 1970년 발표한 ‘콜드 팩트’다. 가난한 이웃과 노동자를 대변하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그의 포크록은 밥 딜런 못지 않은 작품성을 지녔다고 훗날 인정받았다. 제작자는 그를 거리의 시인이자 현자로 기억했다. 하지만 팔린 앨범은 단 6장. 그마저도 제작자 가족과 지인이 산 것이었다. 로드리게스는 이듬해 2집 ‘커밍 프롬 리얼리티’를 냈지만, 이 또한 ‘폭망’했다.
반응은 엉뚱하게도 지구 반대편에서 폭발했다. 음반이 우연히 흘러들어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 체제의 남아공 정부에 맞선 시민들에게 그의 음악은 ‘저항의 노래’가 됐다.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의 밥 딜런·노래를 찾는 사람들·김광석이었다. 진보 성향의 백인 집 턴테이블 옆에는 비틀스 ‘애비 로드’, 사이먼 앤 가펑클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 로드리게스 ‘콜드 팩트’가 3종 세트처럼 자리 잡았다. 로드리게스 음반은 수십만장에서 수백만장까지 판매된 것으로 비공식 집계된다. 모두 해적판이다.
남아공에서 앨범 수록곡 제목인 ‘슈가맨’으로 불린 로드리게스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무대 위에서 총으로 스스로를 쐈다는 둥, 분신했다는 둥 하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졌다. 참다 못한 보석상과 기자가 로드리게스를 찾아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디트로이트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구 반대편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 슈퍼스타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로드리게스는 1998년 남아공을 찾았다. 6회 공연이 모두 매진됐다. 남아공 관객들은 “엘비스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며 뜨겁게 환호했다.
진짜 감동적인 건 이후의 얘기다. 로드리게스는 남아공에서 슈퍼스타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도 미국 집으로 돌아갔다. 남아공 투어에 동행했던 로드리게스의 딸은 “(신데렐라의) 마차가 호박으로 변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로드리게스는 이전처럼 건물 철거, 오물 청소 일을 하며 검소하게 살아갔다. 종종 남아공과 다른 나라에서 공연을 했지만, 수익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그는 2009년 언론 인터뷰에서 “내 이야기는 무일푼에서 부자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일푼에서 무일푼으로, 난 그것이 기쁘다. 나는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다. 현실을 능가하는 건 없다”고 했다.
로드리게스 부고 소식을 접하고, 그가 온라인으로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진 시대에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가정해본다. 일찍이 슈퍼스타가 되고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잡았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온라인 덕에 깜짝 글로벌 스타가 됐으나 곧바로 소속사와 전속계약 분쟁을 벌인 그룹 피프티 피프티를 떠올려본다. 크고 갑작스러운 성공에 취해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너무 성급하게 갈라버린 듯한 이 사태를 봤다면 로드리게스는 뭐라고 했을까? 그의 노래 제목 ‘아이 원더’처럼,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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