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성범죄' '갑질 피해' 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 가능성은 얼마나?

김민정 기자 2023. 8. 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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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피커] 하반기 들어온다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저출생 구원투수'될까


미사여구로 치장된 정부 정책 발표 때 종종 떠올려보는 글귀입니다. 요란하게 홍보된 선의 뒤에 놓친 디테일이 누군가를 지옥에 빠트리진 않을지 짚어보면서요. 정치권이 띄운 외국인 가사근로자(정부의 시범사업 명칭에 따라 '가사근로자'란 단어를 쓴다는 점을 밝혀둡니다.) 이슈를 보면서도 저도 모르게 이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개발도상국 출신 노동자에겐 100만 원도 큰돈이라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논리를 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법안이 가로막히자,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우선 최저임금법을 적용해 하반기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근로자 100명 정도를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서울 시내에 시범 도입하겠다는 안을 공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에 "문화도 다르고 말도 서툰 외국인에게 아이를 맡기며 200만 원 이상 주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장기적으론 내국인보다 돈을 덜 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요.


이 시범 사업, 아직까진 국내 이해 당사자들에게도 그리 환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용이 싸지 않아 실효성이 없을 거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아이를 맡기기 어렵다, 국내 가사근로자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들의 일자리를 잠식할 거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7월 31일 열린 공청회에서 나왔고, 언론에도 많이 다뤄졌습니다.


여러 말들이 오가고 있지만, 정책의 또 다른 주된 대상자가 될 쪽의 목소리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바로, 이 사업을 통해 국내 들어오게 될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의 입장입니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이 사업을 통한 한국행을 택하겠지만, 이는 결코 우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며, 국내의 넘치는 (그러나 자체적으로는 충족하지 못하는) 필요를 외국의 풍부한 공급으로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자리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공적 권위가 개입된 일자리에서라면 더더욱 노동자가 최소한의 기본적 인간의 권리를 지키고 부당한 권리 침해에 방어할 수단이 보장되어야 함이 당연한 일이겠죠. 하지만 그동안 이주민 노동력을 활용하는 제도의 설계에서 제도를 이용하는 중요한 한 축인 이들의 입장은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없었고, 그 결과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법한 광범위한 인권 침해로 귀결돼 왔습니다.

그래서 잘 들리지 않는 비주류의 목소리에 마이크를 갖다 대는 〈더 스피커〉 코너에서,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이들의 관점에서 하반기 예정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와 법무법인 덕수 조영관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최정규 변호사: 신안 염전 노예 사건, 고 김홍영 검사 사망 사건 등 여러 공익 사건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다. 이주민, 장애인, 국가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과 공익을 대변하는 소송을 주로 맡고 있다.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이다. 2015년 한국장애인인권상, 2020년 참여연대 공익제보자상 등을 수상했다. <불량 판결문>, <얼굴 없는 검사들>을 썼다.

*조영관 변호사: 출입국/이민법(이주 및 비자) 전문 변호사, 법무부 인권정책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이다. 혐오와 차별에 노출된 이주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소송을 주로 맡고 있다.

농어촌보다 더 폐쇄적인 가정 내 일자리… 성범죄 일어난다면?



과거 농업 이주여성노동자의 12.4%, 제조업 이주여성노동자의 11.7%가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조사(2016, 2017년)가 있었습니다. 성폭력뿐 아니라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외설적인 농담, 술 강권 등 경중을 망라했습니다. 특히 농촌은 고용주가 마련해 준 일터 내 숙소 역시 폐쇄적인 환경이었고, 당시 법이 정한 사업장 변경 사유에 성폭력과 같은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경우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의 경우 성범죄를 당해도 합법적으로 가해자로부터 떨어져 일터를 옮기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미등록이 될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혹은 낯선 언어로 고용주를 경찰에 고소를 할 결심을 하지 않는 이상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었던 것인데, 실제 심각한 성범죄 사례들로 논란이 되자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8년에 이르러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에서 성범죄를 당하면 다른 일터로 옮길 수 있도록 지침을 수정했습니다.


자, 이제 성범죄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가 고용노동부 고용센터에 피해를 접수한 뒤 경찰에 고소하면 사업장을 바꿔 가해자와 분리될 수 있게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맹점이 있다고 합니다. 사업장을 바꿀 때, 소송 결과에 따라 강제 퇴거될 수 있다는 점을 노동자에게 사전 경고하도록 정부 지침을 만든 게 독소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민정 기자 compas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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