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평 천년숲정원을 앞뜰로 누리는 서라벌 여인의 사부곡[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올해 4월 경상북도 첫 지방 정원으로 문을 연 ‘경북천년숲정원’ 이야기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반에게 개방한 이곳은 2002년 태풍 루사로 쓰러진 나무를 외나무다리로 활용하면서 ‘인생 사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실개천을 따라 쭉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수면에 거울처럼 비친다. 하지만 변변한 이름이 없어 산림환경연구원 수목원으로 불리다가 이번에 비로소 ‘천년숲정원’이란 이름을 얻었다. 신생 정원인데도 천년 고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핫플’로 떠올랐다.
백구(白狗)가 마당을 지키는 그 집 앞에서 30분쯤 기다리자,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혹시 최병문 씨의 부인이신가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서석태 씨였다. 서 씨는 “잘 찾아오셨네. 하긴 이 동네에 나만큼 이 정원을 아는 사람도 없어요. 남편(최병문 씨)과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은 이제 다 퇴직하고 없으니까요.” 서 씨가 맞아 준 집 안 곳곳에는 그들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집에도 작은 텃밭 정원이 있었다. 족두리꽃, 참나리, 애기범부채, 탐스럽게 열린 가지…. 서 씨는 “이거 냄새 좀 맡아보소”라며 보라색 꽃을 피운 사파이어 세이지 잎을 건넸다. 기분이 우울할 때 이 허브 향을 맡으면 행복해진다고 했다.
메타세쿼이아 숲에 이르렀다. 나무들이 우거져 녹색의 색감이 깊었다. 메타세쿼이아가 어찌나 우람한지 서 씨가 두 팔을 벌려도 절반밖에 못 껴안았다. “지금이야 숲이지, 40년 전에는 허허벌판에 가느다란 어린 메타세쿼이아만 있었어요. 연구원 앞의 40m 높이 메타세쿼이아 두 그루도 1970년대에 남편이 심은 묘목이 자란 것이거든요.”
천년숲정원에는 서 씨의 남편이 심었다는 오래된 나무들만 있는 게 아니다. 연구원 안에서 양묘하던 배롱나무 340주로 올해 5월 배롱숲이 새롭게 조성됐다. 배롱나무는 경상북도의 도화(道花)다. 무더위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면서 꽃과 수피(樹皮)가 우아한 배롱나무는 강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경북도민의 기품과 닮았다는 설명이다. 이제 막 심은 배롱나무들은 분홍, 보라, 하얀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줄기가 연약해 보였지만 그래서 꽃과 어울림이 한 편의 시(詩) 같기도 했다. 이 어린 나무들도 언젠가는 노목이 될 것이다.
천년숲정원에는 수목 355종 5만 본, 초목 55종 14만 본 등 410종 19만 본의 식물이 식재돼 있다. 특히 초본의 대부분은 이번에 정원을 만들면서 새롭게 심은 것이다. 여러 종류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무궁화동산, 신라 이미지를 형상화한 서라벌 정원, 울진 후정리 향나무 등 경북지역 천연기념물의 후계목을 키우는 천연기념물원도 조성했다. 어린 학생들이 견학 와서 숲을 배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p.s. 경북산림환경연구원에서 2002년부터 근무했다는 전원찬 산림환경과장은 고 최병문 씨가 연구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금의 천년숲정원 나무를 심는 데 기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함께 밥도 여러 번 먹었습니다. 참 열심히 하셨죠. 옛날 공무원들은 전부 현장에 나가 삽 들고 나무를 심었으니까요.”
전 과장 개인적으로는 연구원 본관 앞에 심어진 은목서가 뜻깊다고 했다. “경북대 임학과에 다니던 1988년, 연구원으로 실습을 나왔을 때 봤던 은목서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당시 은목서의 북방한계선은 경주 부근이었는데, 지금은 기후변화로 인해 서울에서도 심는 나무가 됐어요.” 정원은 지나간 시간을 음미하는 곳인 동시에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일깨워주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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