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협력은 시작 불과… ‘아·태式 나토’ 창설해 안보 지속성 갖춰야[Deep Read]

2023. 8. 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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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준의 Deep Read - 한미일 3각협력을 넘어
韓 정권교체 땐 대외정책 연속성·국가간 합의 번번이 깨져… 한미일 관계도 원점 회귀 가능성
가해국·피해국 서로 껴안아 70년 협력한 나토 모델 주목… 미+한·일·호·뉴 5자 안보협력체 필요

문재인 정부 5년간 한·일 관계 악화와 중국의 집중 견제로 해체 지경에 이르렀던 한·미·일 안보협력이 18일(현지시간)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본격화할 전망이다. 특히 3국 정상회의 및 합동군사훈련 정례화 등 파격적 기능 격상이 예상된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외정책이 여반장으로 뒤집히는 상황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이 얼마나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3국의 협력을 넘어, 국내외 정치 변동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작동할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 안보협력체가 구축돼야 할 이유다.

◇한·미·일 협력 정상화

미국은 1991년 냉전체제 종식 이후에도 러시아의 군사적 팽창에 대비해 유럽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라는 거대한 집단방어체제를 유지해 왔다. 동아시아에서는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이 최대 현안이었기에, 미국은 이에 대비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굳건히 하는 한편 두 동맹체를 상호 연결하는 한·미·일 3자 안보협력체제 구축에 많은 공을 들였다. 한·일 관계의 예측 불가성에 따른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를 나토에 비견되는 동아시아 안보체제의 근간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해 왔다.

미국은 내심 3국이 나토와 같은 다자동맹을 형성하기를 원했겠지만, 이는 한·일 관계의 현실에 비춰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미국과의 양자동맹으로 연결하고 한국과 일본 사이는 점선으로 연결하는 느슨한 3자 안보협력체를 운영해 왔다. 그러한 3자 안보협력은 문재인 정부 5년간 계속된 반일 캠페인과 친중·친북정책으로 해체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이제 5년간 중단됐던 한·미·일 안보협력이 복원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러나 그 중단 기간에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급변했고,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범세계적 신냉전체제 도래로 한·미·일 안보협력이 수행할 역할도 크게 변했다.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능가하는 과제로 부상했고, 대만과 남중국해 문제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세상이 됐다. 동아시아의 평화 없이는 한반도 평화도 없기 때문이다.

◇지속가능성 문제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에서 외교적·군사적 결속 강화가 논의되는 건 매우 시의적절하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3자 안보협력이 준동맹의 형태로 발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그 가능성을 우려해 사전 차단에 노력해 왔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포함된 문재인 정부의 ‘3불 약속’은 그런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1년여 동안 한·미동맹과 3자 안보협력 복원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그 결과에 대한 미·일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분히 유보적이다. 다음 대선 이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그만큼 한국 대외정책의 연속성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고도의 불신 대상이 됐다.

이번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3자 안보협력 강화를 위한 합의가 도출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정권교체 등 국내 정치적 변동이나 한·일 관계에 변화가 생길 때마다 기존 합의가 폐기되고 협력이 동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과거 한·미·일 안보협력에서 합의됐던 정례적 국방장관회담, 대잠수함 훈련, 미사일 경보훈련 등이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대부분 중단되거나 축소됐는데, 그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권교체나 한·일 관계 파행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작동할 안보협력체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 해답은 나토의 선례에서 찾을 수 있다. 31개국으로 구성된 나토는 유럽과 북미 자유민주진영 내의 오랜 적국과 경쟁국들, 가해국과 피해국들을 하나의 동맹체 안에 쓸어 담은 거대한 용광로와도 같다. 유럽의 패권을 놓고 수백 년 전쟁을 벌인 영국과 프랑스, 프랑스와 독일, 독일에 대한 사무친 원한을 간직한 폴란드 등 상호협력이 불가능한 나라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 아래 결집해 70년 이상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만일 미국이 나토 대신 양자·3자 동맹체 같은 것을 운영했다면 자중지란으로 이미 오래전에 깨졌겠지만, 그간 나토라는 광역 안보협력체를 버리고 진영을 바꾼 나라는 없었다. 이웃과 분쟁이 생겨도 나토 안에서 싸웠고, 국내 정치적 이유로 국가 정체성이 바뀌어도 소속 진영을 바꾸기보다는 나토에 잔류하면서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다. 한국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한·일 관계 악화로 한·미·일 합동훈련이 장기간 중단되는 상황에서도 아·태지역 우방국이 대거 참여하는 광역 연합훈련인 림팩훈련 참여는 거의 중단 없이 계속됐다.

광역 안보협력체의 필요성은 이런 지점에서 제기된다. 만일 아·태지역에서 미국과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국 사이의 개별 안보협력을 하나로 묶어 역내 자유민주진영을 포괄하는 5자 안보협력체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는 유럽의 나토에 필적하는 가치와 안보의 연합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선도해야 할 이유

미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의 안보협력체 테두리 내에서 정례적 5자 정상회의, 외교·국방회담, 합동군사훈련 등을 실시함으로써 집단 안보협력을 강화하면 중국의 패권주의적 팽창에 대한 효과적 공동방어막이 되고, 나토식 군사협력체로 발전될 수도 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한·미·일 3자 협력 등 기존 안보체제는 현행대로 유지해 다중 방어막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

세상엔 동일한 가치관과 이해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모여 결속을 다지는 협력체가 많으나, 한국은 한·미동맹 외에 딱히 소속이 없다. 한·미·일 안보협력은 한·일 관계의 위태로운 토대 위에 세워졌고, 아태경제협력체(APEC),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은 동질성이 없는 외교협의체일 뿐이다.

소속집단이 없으면 때로 외교적 정체성의 불안정성과 대외적 취약성을 키운다. 한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중국이나 러시아 등이 사사건건 간섭·압박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태지역 광역 안보협력체 창설은 주변 강대국이나 북한의 빈번한 위협과 간섭에 노출된 한국에 동질성 있는 소속그룹을 만들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유럽의 나토에 비견될 만한 아·태 안보협력체 창설에 선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종연구소 이사장, 전 외교부 북핵 대사

■ 용어설명

‘캠프데이비드’는 메릴랜드에 위치한 미 대통령 전용 별장. 외국 정상에 대해 친근감을 표할 때 초청하는 장소로도 사용. 루스벨트 대통령이 처칠 영국 총리와 2차대전 승리 전략을 논의하기도.

‘신냉전’은 나토·파이브아이즈 중심의 서방 국가와 집단안보조약기구·상하이협력기구 중심의 반서방 국가 간의 체제 경쟁을 가리키는 용어. 1950∼1980년대 냉전 종식 후 다시 찾아온 2차 냉전.

■ 세줄 요약

한·미·일 협력 정상화 : 문재인 정부 때 해체 지경에 이르렀던 한·미·일 안보협력이 캠프데이비드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본격화할 전망. 특히 3국 정상회의 및 합동군사훈련 정례화 등 파격적 기능 격상이 예상됨.

지속가능성 문제 :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 대외정책이 뒤집혀 한·미·일 관계도 원점 회귀할 수 있다는 점. 3국 안보협력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정치적 변동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작동할 안보협력체 구축이 절실.

어떻게 해야 할까 : 가해국과 피해국을 모두 껴안아 70년 이상 집단안보에 협력해온 나토 모델 주목. 아·태지역도 나토에 비견될 안보협력체 필요. 한국은 미+한·일·호·뉴 5자 안보협력체 창설에 선도적으로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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