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스러운 장자늪 한가운데로… 카누에 몸 싣고 ‘갯버들 터널’ 누비다[박경일기자의 여행]
고른 유속 따라 습지 탐방
조정지댐 늪에 샛길같은 수로
4대강 사업 계기로 다시 열려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발돋움
3.5㎞ 카누 타고 1시간 즐겨
습지 자연에 손닿을 듯 ‘탄성’
내달 오픈… 올해까지는 무료
출발지 캠핑장엔 소나무 울창
천천히 걸으며 원도심 탐방
성내동 담장골목·지현동 주택가
스토리 있는 도시재생 공간으로
카페·공방… 관광객들 끌어들여
카페 ‘세상상회’ 문열자 입소문
25년된 ‘재즈와 산조’감성 가득
맞은편엔 핫플 ‘빠리방앗간’도
차분한 여행자들 찾아오는 도시
충주=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충청북도가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를 선언했습니다.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는 바다가 없는 충북이 역점을 기울이고 있는 호수 중심의 미래전략 프로젝트의 구호입니다. 수자원 가치를 재발견해 친환경 힐링 공간을 확충하고 자연경관과 여가 문화 등을 접목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지요. 레이크파크는 호수와 낭만, 스토리텔링과 힐링을 결합해 만들려고 하는, 울타리 없는 국내 최대 관광지를 지향합니다. 이제 막 출발점에 선 레이크파크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요.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요. 충주댐 아래 장자늪의 수로에서 이제 막 시작한 카누체험을 보고 왔습니다. 더불어 충주 구도심에서, 오래된 것들을 밑 재료 삼아 새로운 감각을 덧대 만들어낸 공간도 둘러봤습니다. 이번 주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여행을 가능케 하는 충주의 새로운 목적지이자, 새로운 경험의 공간을 소개합니다.
# 고른 유속의 물에 카누를 띄우다
충주호 아래 조정지댐이 있다. 홍수조절을 돕는 조정지댐은 발전을 위해 댐에서 일시에 흘려보낸 물을 가뒀다가 하류로 내려보내는 역할도 한다. 본댐에서 들쑥날쑥 방류한 물을 받아뒀다가 ‘같은 양의 물’을 ‘같은 속도’로 고르게 하류로 내려보내는 것이다. 이런 물에 배를 띄워보면 어떨까. 힘들여 노 젓지 않아도 두둥실 떠내려가지 않을까. 카누체험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조정지댐 아래에는 장자늪이 있다. 본류 물길 옆에 있는 장자늪은 밀생한 버드나무와 초지로 이뤄진 습지다. 장자늪에는 샛길 같은 수로가 있었다. 그런데 오래전에 인근에서 단무지 무 농사를 짓던 몇몇 주민이 그걸 제멋대로 메워버렸다. 천변 한쪽에는 단무지 무를 공장에 납품하기 전에 소금에 절여 담아두는 구덩이를 만들어놓고는, 밭에서 여기까지 무를 쉽게 옮기기 위해 아예 수로를 메워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메워진 장자늪 수로 물길이 10년 전쯤 ‘4대강 사업’ 공사를 하며 다시 열렸다. 4대강 사업은 감사원 감사를 10번이나 받은 뒤에도 사업이 적절했는지가 여전히 논란이지만, 장자늪 수로 복원만큼은 백번 잘한 일이다. 수로를 다시 내면서 습지의 생태는 훨씬 더 풍성해졌다. 수로가 다시 놓인 뒤 충주시는 장자늪 주변의 불법시설을 다 내보냈다. 그리고 장자늪 수로에서 카누를 타는 카누체험을 제안했고, 이게 레저스포츠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돼 이달 중 본격 운영을 시작하게 됐다. 충북이 내건 ‘레이크파크 르네상스’ 기치에 딱 맞는 관광 프로그램이다.
카누체험이 이뤄지는 수로 구간은 중앙탑휴게소 근처 ‘버드나무숲’에서 캠핑장이 있는 목계솔밭까지다. 3.5㎞ 남짓의 거리인데 카누를 타는 시간만 1시간쯤 걸린다. 걷는 것보다 조금 느린 속도다. 전체 코스 중 가장 인상적인 곳은 초입의 갯버들 숲 터널이다. 수로 양쪽에 밀생한 갯버들은 마치 열대지방의 맹그로브 숲 수로를 닮았다. 이국적인 정취가 ‘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 물길 따라 갯버들 터널 내려오는 기분
조정지댐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다. 노 젓기에 서툴러도 카누는 유속보다 반 발짝쯤 뒤에서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따금 노를 물에 넣어 가는 방향만 바로잡아 주면 된다. 카누를 처음 타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10분 남짓의 기본교육만 받으면 충분하다. 요령도 그다지 필요하지 않고, 체력소모도 훨씬 덜하다. 그래도 카누의 정취와 감동은 두 배다.
카누를 타면 신세계다. 조용한 여울의 물살에 배를 맡기고 갯버들 터널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평화로움’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습지의 자연과 손 닿을 거리만큼 다가가 자연과 생태를 실존의 가치로 느끼는 경험도 하게 된다. 물새들이 날아오르는 수변의 낭만적인 느낌도 기대 이상이다.
카누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장은 전국에 여러 곳이 있다. 강원 춘천에도 있고 홍천에도, 전북 진안에도 있다. 대개 강이나 호수에서 카누를 빌려 제 맘대로 타는 방식이다. 여기처럼 물의 속도에 배를 맡기고 수로를 따라 내려가는 코스는 없다. 동호인들이 하천에 카누를 띄워 트레킹처럼 즐기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이런 건 숙련자들만 가능한 경험이다. 안전도 안전이지만, 타고 내려간 카누를 상류로 회수할 방법이 쉽지 않아서다.
장자늪 카누체험은 목계솔밭캠핑장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참가자들은 캠핑장에 집결한 뒤 자전거로 강변길을 달려 카누출발지점인 중앙탑휴게소 근처까지 간 뒤에 거기서 카누로 갈아타고서 물길을 따라 캠핑장으로 되돌아온다. 카누체험의 출발지점을 굳이 캠핑장으로 한 건 두 가지 이유. 하나는 자전거를 타고 ‘바깥에서 보는 강변 습지 풍경’을 느껴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레포츠에 관심이 많은 캠핑 이용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초기에 캠핑장이 카누체험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카누체험이 인기를 끌면 캠핑장이 적잖은 후광 효과를 얻을 것이란 계산도 있다.
장자늪 카누체험은 당초 지난 7월부터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장마와 폭염, 태풍으로 9월로 미뤄졌다. 체험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만 진행하는데, 수∼금요일은 충주 주민 대상, 토∼일요일은 외지인 대상이다. 요금은 무료. 요금은 내년부터 받는다. 체험은 하루 3회 진행되는데 한 번에 2인승 카누 4대가 뜨니 회당 이용 인원은 8명이다. 3번 체험이라고 해도 체험 인원은 하루에 24명이 고작이다. 서둘러 예약해야 하는 이유다. 예약은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받고 있다.
# 숱한 전설과 과거의 영화
중앙탑휴게소 부근에서 출발한 카누는 장자늪을 빠져나와 KTX 중부내륙선 철교 아래와 평택∼제천고속도로의 남한강대교, 38번 국도의 목계대교 교각 아래를 차례로 지나간다. 탁 트인 샛강에서 노를 저으며 까마득한 높이의 교각 아래를 지나는 느낌이 또 색다르다. 하지만 카누 체험의 백미는, 다시 말하지만 비밀스러운 느낌의 장자늪 구간이다. 장자늪에는 전설이 있다. 일대가 천석꾼의 집이었는데 시주 온 노승을 문전박대한 뒤 집 자리가 호수가 돼버렸다는 얘기다. 비슷한 전설이 전국 곳곳에 있다. 노승에게 사죄한 천석꾼 며느리가 당부를 어기고 뒤돌아봤다가 그만 돌이 돼버렸다는 이야기까지 똑같다. 며느리 형상의 마땅한 돌이 없었던 것일까. 장자늪 전설에서는 며느리가 돌이 아닌 부도가 됐다.
전설은 또 있다. 목계솔밭캠핑장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카누 출발지점인 중앙탑휴게소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습지 가까운 초지에 독특한 형상의 바위가 있다. ‘사랑바위’다. 이 바위에 얽힌 얘기. 결혼하고도 아이가 없었던 부부가 있었다. 5대 독자인 남편은 어른의 닦달로 첩을 들였으나 첩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후사가 끊길 상황이 되자 아내는 남편의 재가를 위해 스스로 장자늪에 몸을 던졌다. 뒤이어 남편도 식음을 전폐하다 뒤따라 세상을 떴다. 부부가 죽자 장자늪 물이 마르더니 여성과 남성의 상징을 닮은 바위가 나타났는데, 사랑바위는 그중 여성을 닮은 바위에 붙여진 이름이다.
카누체험의 출발과 종점인 캠핑장의 목계솔밭은 100살이 훌쩍 넘는 소나무 80여 그루만으로 이뤄진 숲이다. 목계솔밭 일대는 한때 호젓한 노지캠핑 명소로 이름을 날렸는데, 알음알음 알려지면서 알박기 텐트에다 캠핑카와 차박 행렬까지 밀려드는 바람에 아주 도떼기시장이 됐다. 보다 못한 충주시가 정비사업을 통해 쾌적한 캠핑장으로 조성해 지난 3월 문을 연 곳이 목계솔밭캠핑장이다.
# 나룻배 사라진 자리에 카누가
목계솔밭캠핑장 강 건너편은 목계나루다. 목계나루는 한때 남한강 수운(水運)의 중심이었다. 내륙의 물산이 한강 뱃길을 따라 한양으로 가자면 반드시 들러갔던 곳이었다. 정선에서 소나무를 싣고 내려온 뗏목과 서해에서 젓갈을 담은 항아리를 싣고 온 배가 여기서 교차했고, 우시장으로 가던 소를 실은 배가 여기서 쉬어 갔다. 배가 들어오면 나루터 주변은 사흘이고 나흘이고 장날처럼 북적거렸다.
남한강을 오르내리는 배에게 목계나루는 쉬어가는 곳이었고, 강을 가로질러 건너가는 이들에게 목계나루는 뱃사공을 기다리던 곳이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인 목계교는 1972년 놓였는데, 목계교가 없었을 때는 다들 나룻배로 남한강을 건넜다. 자주 강을 넘어다니던 마을 사람들은 아예 1년 치 뱃삯을 미리 치르기도 했단다. 목계나루의 배는 말만 나룻배지, 실제로는 큰 배였다. 버스도 태웠고, 소를 가득 실은 트럭을 태운 채 강을 건너기도 했다. 버스며 트럭이 나룻배를 기다리며 쉬어가거나 묵어갔다. 그러다 밥상도 받고, 막걸리도 따르고 했을 터이니 목계나루터는 늘 왁자했으며 마을은 번성했다.
목계나루가 쇠락한 건 다리가 놓이고 도로가 뚫리면서부터다. 번성했던 마을이 스러지는 속도는 번개 같았다. 마침 목계교를 놓은 이듬해 대홍수가 났는데, 그 바람에 주민들이 한꺼번에 마을을 떠났다. 마을 하나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목계 강변 한쪽에 목계나루가 번성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시 한 편이 비석으로 세워져 있다. “하늘은 날 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 땅을 날 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로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의 시 ‘목계장터’다. 시에는 ‘박가분 파는 방물장수’와 ‘민물새우 끓어 넘는 토방 뒷마루’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등장한다. 격세지감. 지금은 장면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다. 목계나루 건너 캠핑장에서는 바비큐가 한창이고, 나룻배로 건너던 남한강 변의 습지 수로에서는 젊은이들이 카누를 젓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강물은 유장하게 흘러가는데….
# 작은 도시와 좁은 골목 이야기
이번에는 카누만큼 새롭고 흥미진진한, 충주 도심 여행 이야기다. 여행자들은 그동안 충주 시내에 가볼 일이 거의 없었다. 충주가 이름난 여행지가 아닐뿐더러 충주를 여행했다는 이들도 수안보온천이나 활옥동굴, 중앙탑공원이나 가봤지, 충주 시내에 발을 디뎌본 경우는 거의 없다.
충주 도심은 청년들의 도시재생 사업에 힘입어 ‘여행하기 좋은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요즘 도시 여행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낡고 오래된 곳을 감각적으로 다듬어낸 도시재생 공간이다. 충주에서는 쇠락해가는 도심의 낡고 오래된 골목과 도시재생으로 새로 들어선 소소한 공간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옛 충청감영 관아가 있던 터라 관아골이라 불리는 성내동의 ‘담장골목’이다. 이 골목은 청소년들이 몰려가 담배나 피워대던, 그래서 다들 ‘담배골목’이라 부르던 원도심의 후미진 골목이다. 이곳에 전직 도시재생 컨설턴트 남편과 구두디자이너 아내가 차린 카페 ‘세상상회’가 들어섰다. 카페가 문을 열자 뒤이어 미술학원과 도자기 공방, 전시장, 작업실, 로컬 여행사가 줄줄이 따라 들어오면서 담장골목은 여행 명소가 됐다.
담장골목을 비롯한 성내동의 재생공간은 규모가 작고 소박하다. SNS에 사진을 올려 부러움을 한몸에 받을 수 있는 곳도 없고, 이른바 ‘오픈런’ 해야 할 만큼 유명한 맛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골목은 소박하다. 낡고 오래된 공간과 감각적이고 새로운 공간이 서로 스미듯이 어우러졌을 따름이다.
성내동을 매력적이게 하는 건 고쳐 지은 곳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점이나 식당, 그리고 테이블 두어 개가 고작인 손바닥만 한 식당도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다. 성내동에는 38년 동안 매일 새벽 5시 30분에 문을 여는 ‘복서울해장국’이 있는가 하면 테이블이 2인용 딱 3개뿐이어서 일행 2명까지만 손님을 받아 오믈렛과 파스타를 차려 내는 식당 ‘심향’도 있다.
# 스토리로 살려낸 도시 경관
성내동 말고도 충주 도심에는 흥미로운 도시재생 공간이 또 있다. 성내동에서 멀지 않은 동네 지현동이다. 성내동이 주요 관공서가 모여 있던 행정·상업의 중심지였다면, 지현동은 ‘옹달샘 시장’이라는 작은 시장 하나와 오래된 주택가로 이뤄진 주거 중심 동네다.
가볍게 걸어서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두 동네가 가깝지만, 도시재생 공간의 느낌이나 분위기와 지향은 사뭇 다르다. 앞서 들른 성내동이 관아공원을 중심으로 쇠락해가는 구도심에 카페며 공방 등을 만들어가는 쪽이라면, 지현동은 지역의 스토리 자원을 활용해 골목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거나 특색 있는 조형물 등을 세워 다채로운 볼거리로 여행자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지현동의 테마는 사과다. ‘충주 사과’를 처음 재배했다는 동네였다는 데 착안해 사과를 모티브 삼고 다양한 조형물과 벽화를 그려 넣었다. 이름하여 ‘사과나무이야기길’이다. 벽화의 주제는 사과뿐만 아니다. ‘산토리니길’도 있고, ‘커피가있는재즈길’도 있고, ‘귤향기솔솔길’도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방문객이 늘어나는 등 성과가 두드러지자 충주시는 주택가 한복판에 지상 4층 규모의 ‘지현문화플랫폼’이란 이름의 번듯한 거점 시설을 지어줬다.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 카페와 공유 주방이 있고 파티룸으로도 활용하는 다목적 공간이다. 사업 성공이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사례다.
지현동에는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공간보다 더 멋진 곳이 있다. 오래된 주택을 리모델링해 만든 빈티지 감성의 카페 겸 펍 ‘재즈와 산조’다. 카페는 마당이 있는 쓰러져가는 낡은 기와집을 손봐 만든 곳인데, 평범한 주택가 한쪽의 벼랑 아래 숲 속에 마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 충주 여행자는 ‘극도의 내향형’?
카페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재즈와 산조는 ‘노포 중의 노포’다. 지현동뿐만 아니라 충주 전체를 통틀어도 이만큼 나이 먹은 카페는 드물다. 문 연 지 올해로 25년째. 한 세대쯤 전에 문을 열었는데도 어떻게 지금의 감성과 이렇게 딱 맞을까. 카페는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기와에 덧댄 함석 차양이며 교실 마루 같은 바닥, 칠이 벗겨진 테이블, 빨래집게로 매달아 놓은 그림과 메모, 벽에 빽빽하게 꽂힌 LP판과 CD, 흘러간 왕년의 팝스타 포스터, 석유 심지로 켜는 램프, 마구 쌓아놓은 책….
실내는 온통 잡동사니들로 가득한데도, 희한하게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이다. 늙은 한옥과 재즈풍의 카페가 오래 동거하며 서로 스며들어서 그럴까. 시간이 새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가 그곳에 있다. 이곳만큼은 다른 비슷한 어떤 곳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재즈와 산조’에 가봐야 하는 이유다.
재즈와 산조 맞은편에는 충주에서 가장 ‘핫’한 프렌치레스토랑 ‘빠리방앗간’이 있다. 인근 방앗간 집 아들이 프랑스로 요리 유학을 다녀와 고향에 내려와 문을 연 곳이다. 조금주 재즈와 산조 대표는 지금은 어엿한 오너셰프가 된 방앗간 집 아들의 유년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두 집은 나란히 일요일과 월요일에 쉰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면서 멀리 그리고 오래 가기 위해서다.
충주를 찾아오는 여행자들은 누굴까. 관아골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했던 유순상 씨에게 물었다. 그는 성남동의 문 닫은 여관건물을 리모델링해 청년들의 사업공간으로 빌려주는 로컬복합상가 ‘복작’의 대표다. 그는 이렇게 규정했다. “충주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거의 예외가 없어요. 대부분 ‘극(極) I’형이에요.” 성격유형검사 MBTI가 구분하는 E형이 활동적인 외향형이라면, I형은 조용한 내향형이다. 유 대표의 말은, 충주 도심을 찾는 여행자가 ‘극도의 내향형’이라는 뜻이다. 그럴 수 있겠다. 내로라하는 이름난 여행지와 시끌벅적한 대도시가 곳곳에 있는데, 하필 고즈넉한 중소도시를 여행하겠다고 선택했다면 말이다. 충주는 떠들썩한 관광이나 과시형 여행보다, 책 한 권 챙겨 들고 골목길을 둘러보는 차분한 여행이 백 배쯤 더 어울린다. 누구나 왜, 그런 여행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 ‘치맥’ 말고 ‘치막’
충주에는 ‘치막’이 있다. 치맥이 치킨과 맥주라면, 치막은 치킨과 막국수다. 메밀가루 반죽 옷을 입혀 튀긴 치킨을 막국수와 함께 먹는다. 느끼한 닭튀김의 맛을 칼칼한 막국수가 잡아준다는 주장이다. 중앙탑공원 옆에 치막을 내는 식당 6곳이 모여 있다. 급조한 신메뉴 같지만, 이래 봬도 내력은 10년이 훨씬 넘었다. 충주에는 ‘감자만두’도 있다. 감자떡 반죽으로 빚는 쫄깃한 만두다. 충주무학시장에 원조 격인 ‘대우분식’을 비롯한 분식집에서 감자만두를 판다. 충주에는 또 44년째 평양식 냉면을 내고 있는 냉면집 ‘삼정면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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