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집시들의 애환·열정… 바이올린 선율에 녹여내다[이 남자의 클래식]
1922년 작곡… 2년만에 완성
영감줬던 옐리 다라니에 헌정
느린 속도·빠른 템포로 구성
밀도 높은 카타르시스 선사
이른바 ‘집시 음악’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오랫동안 많은 음악가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줬다. 그러나 ‘집시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나긴 유랑 여정의 역사만큼이나 그들의 음악 또한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동유럽으로 또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 고유의 음악에 정착지 곳곳의 선율과 리듬을 끊임없이 결합시켜 왔기 때문에 고착화된 전형적 음악적 특징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에선 다른 음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애환과 열정’의 정서다. 그리고 그 애환과 열정을 담은 ‘집시 음악’의 대표 격이 바로 헝가리 음악이다. 집시들은 오랜 기간 헝가리를 중심으로 동유럽에 정착해왔고 바이올린이라는 열정적 악기를 통해 그들 특유의 음악을 전해온 것이 그 이유다. 이들의 매력적이고도 이국적인 연주는 많은 작곡가들을 매료시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독:집시의 노래)’ 등의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인 1922년,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은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이 작곡한 작품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주’가 연주되는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날의 연주는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린 비르투오소(명연주자) 옐리 다라니(1893∼1966)와 네덜란드 출신의 첼리스트 한스 킨틀러(1892∼1949)가 맡았는데 이날 연주에서 라벨은 특히 바이올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라벨은 연주 내내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다라니가 뿜어내는, 마치 집시를 연상시키는 열정적 바이올린에 매료됐다.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라벨은 다라니를 찾았고 그녀에게 헝가리의 ‘집시 음악’ 몇 작품을 연주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날 연주에서, 또 연주 이후 그녀에게서 들었던 ‘집시 음악’의 감동은 라벨에게 음악의 모티브가 되었고, 그는 곧장 작곡에 착수했다.
라벨은 새로 작곡할 바이올린 작품 안에 ‘집시 음악’의 열정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최고의 기교를 최상의 난도 안에서 녹여내고 싶었다. 라벨은 회심의 새로운 작품을 위해 보다 많은 음악적 영감이 필요했다. 라벨은 곧바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엘렌 주르당 모랑주(1888∼1961)를 떠올렸고 그녀에게 자신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부탁의 내용은 “자신이 작곡하는 동안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연주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라벨은 최상의 테크닉이 담긴 작품 ‘24개의 카프리스’를 들으며 헝가리 ‘집시 음악’을 오선지에 적어 내려갔다.
마침내 작품은 완성됐지만 이 작품에 큰 지분이 있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주르당 모랑주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이유인즉 이 작품은 ‘연주하기에 너무 까다롭고 난해하다는 것’. 바이올리니스트의 입장에서 이 작품은 ‘극소수의 명연주자들을 제외하곤 프로 연주자들조차 소화해 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이에 라벨은 오히려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군. 평범한 연주자들은 애초에 이 작품을 연주조차 못 할 테니 나는 그들의 어설픈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아닌가?” 이 작품 ‘치간’은 바이올린이 할 수 있는 날 선 모든 기술들이 총망라된 작품으로, 라벨의 말처럼 어설픈 연주자들이라면 이 작품은 연주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라벨 ‘치간’
1922년 작곡에 착수해 2년만인 1924년 완성, 초연됐고 작품에 영감을 줬던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옐리 다라니에게 헌정됐다.
‘치간’은 프랑스어로 ‘집시’라는 뜻으로, 작품은 도입부터 바이올리니스트의 현란한 기교를 앞세운 카덴차(cadenza)로 시작해 느린 템포인 라수(Lassu), 헝가리 ‘집시 음악’풍의 빠른 템포 프리스(Friss)로 이어지며 밀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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