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색의 방, 가구처럼 채운 그림들…박미나 개인전
아뜰리에 에르메스서 펼쳐
사회학자처럼 색깔 탐구해
1134개 물감으로 재현 작업
현대사회 욕망을 평면 회화로
마치 사회학자처럼 색채와 형상 탐구에 매진해 온 중견 작가 박미나(50)의 개인전 ‘아홉 개의 색, 아홉 개의 가구’가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가 19년 전 처음 선보였던 회화를 발전시킨 이번 전시는 우선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신선하다. 아울러 개념적으로 발전된 형식으로 펼쳐 작가의 색채 데이터 세계관이 완성된 경지에 이르렀음을 선언하는 듯하다.
작가는 물감과 볼펜, 화장품 등을 꾸준히 수집해 오면서 1999년부터 색칠공부 드로잉, 스크림, 색채 수집, 딩뱃 회화 등 회화 연작을 진행해 왔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브랜드 아파트 바람과 함께 미술 투자 열기가 거세지던 때 한 갤러리 관계자로부터 ‘오렌지색 그림’이 있냐는 질문을 받은 것이 단초가 됐다.
당시 그는 시중에 유통되는 오렌지색 물감을 모두 모아서 당시 유행하던 2인용 소파 크기에 맞춰 오렌지 줄무늬 회화를 완성했다. 크기도 당시 중산층이 탐하던 강남 브랜드 아파트의 표준 천장 높이 230㎝에 맞춰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자주색 등 원색 계열에 흰색, 회색, 검정 등 무채색을 더해 9가지 색을 정하고 물감의 종류로 크기를 계산한 후 실제 가구 이미지(다이어그램)를 받치는 캔버스 구조가 됐다. 20년새 국민소득이 1만5000달러에서 3만 달러로 갑절이 넘고, SNS(사회관계망서비스)확산으로 더 고급스러워진 인테리어 수요를 반영했다. 최고급 아파트 층고에 맞춰 그림 높이를 30㎝가량 늘리고, 럭셔리 잡지에서 고급 가구 이미지를 찾고 실측했다. 노랑 물감 234개와 옷장, 파랑 물감 202개와 침대, 빨강 물감 154개와 TV 등으로 짝을 맞췄다.
주관이 철저히 배제되도록 물감 제조사나 알파벳 순서로 구성했는데, 의외로 “이게 노랑이 맞나” 싶은 검은색이 뜬금없이 끼어있어 놀란다. 갸우뚱 하던 찰라 함께 전시된, 색상별 명칭 정보 개념도를 꼼꼼히 쳐다보면 답을 얻게 된다. 아울러 ‘선원의 꿈’이나 ‘행복의 추구’란 이름을 단 파랑과 ‘영원’이란 이름의 보라 등 추상적이면서 시적인 색명도 흥미롭다. 자연을 최대한 재현해낼 것 같은 인공물감 색도 결국은 물감을 제조·판매·유통하는 산업 시스템 안에서 인간 심리를 이용해 소비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안소연 아티스틱 디렉터는 “통상적인 아파트 동선을 참조해 전시장에 작품을 배치했다”며 “작가는 1134종 물감을 직접 붓으로 칠하면서 회화의 물리적 속성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했는데, 각 캔버스가 실제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처럼 하나의 설치미술로 탈바꿈하면서 회화라는 매체의 특수성을 지키면서도 확장된 장으로 나아가 흥미롭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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