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주 미아가 될 뻔한 보이저 2호는 어떻게 부활했나[홀리테크]

박건형 기자 2023. 8. 1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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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가장 위대한 항해자’와의 교신 끝낼 뻔
보이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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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는 태양계 바깥의 탐사선을 향해 신호를 발사했습니다. 일상적인 명령을 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신호를 받는 주인공은 보이저 2호. 1977년 8월20일 발사된 지 46년, 날짜로는 1만7000일 이상을 날고 있는 탐사선입니다. 하지만 연구팀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연락이 끊긴 것이죠.

NASA 성간(星間) 탐사 프로젝트 책임자인 수전 도드와 팀원들은 보이저 2호에 잘못된 명령어가 전송됐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스페이스닷컴은 “도드의 팀은 사전에 명령어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했지만, 실제 전송할 때 이전 버전을 보이저 2호에 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무려 지구에서 192억km나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지구를 향해있던 보이저 2호의 안테나는 2도가량 비틀어졌습니다. 오차가 허용되지 않는 망망대해 같은 우주 공간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죠. 보이저 2호는 지구에서 보내는 신호를 받을 수도, 지구로 신호를 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NASA 과학자들은 밤을 새우며 해결책 찾기에 착수했습니다.

◇”응답하라 보이저 2호”

와이어드와 BBC 등에 따르면 이 문제는 사실 몇 달만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보이저 2호에는 돌발 상황이나 통신 두절 등을 대비해 자동으로 시스템을 복원하는 안전장치, 이른바 ‘오류 보호’라는 소프트웨어 옵션이 탑재돼 있습니다. 이 옵션은 정기적으로 자동 실행되는데 다음 작동 시기는 10월15일이었습니다. 안테나를 지구 방향으로 정확히 재조정하는 것도 이 옵션에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NASA 과학자들은 최후의 수단만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태양계 밖 미지의 영역을 날아가고 있는 보이저 2호가 앞으로 두 달 넘는 기간 수집한 데이터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보이저 2호의 메모리(RAM)는 68KB(킬로바이트)에 불과하고 보조 기억장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카세트테이프보다도 구형입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하면 그 자리에 새로운 데이터를 덮어써야 하고, 백업 장치도 없다보니 통신이 되지 않는 기간의 자료는 영원히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죠. 통신이 끊어진 기간에 보이저 2호가 내부 고장을 일으켜 영원한 미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이 넘는 회의와 검토 끝에 NASA는 시도해볼 만한 방법을 찾아냅니다. 보이저 2호가 있는 방향으로 ‘안테나 각도를 바꾸라’는 신호를 최대한 강하게 여러 차례 보내면서 미약한 신호라도 감지하도록 하는 겁니다. NASA는 이를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크게 소리쳐서 쳐다보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간단한 일 같아 보이지만, 복잡하고 정교한 계산과 정밀한 송신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거대한 우주라는 공간에서 먼지에도 비견할 수 없는 조그만 탐사선을 겨냥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37시간의 기다림 끝에 복구

1986년 보이저2호가 근접 촬영한 천왕성. /NASA

8월2일 오전, 호주 캔버라에 있는 70m, 100㎾(킬로와트) 접시 안테나를 통해 최대 출력의 신호가 발사됐습니다. 이 안테나는 JPL이 전 세계의 초대형 안테나를 연결한 ‘딥스페이스 네트워크’ 또는 ‘심우주(深宇宙) 통신망’으로 불리는 시스템의 일부인데, 보이저 2호는 궤도 때문에 지구 남반구에 있는 안테나를 통해서만 통신이 가능합니다. 이 신호가 보이저 2호에 제대로 도달했는지, 보이저 2호가 자세를 바로 고쳤는지 확인하는데만 무려 37시간이 걸립니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전파가 보이저 2호까지 닿는데만 18시간 이상, 돌아오는데도 18시간 이상이 필요합니다. 태평양 표준시 기준 8월3일 오후 9시30분에 보이저 2호의 신호가 호주 캔버라에 도착했습니다. 2주 만에 우주 미아를 되찾은 겁니다. JPL의 린다 스필커는 와이어드에 “보이저 2호의 발사 이후 가장 긴 시간 동안 연락이 끊긴 사례”라고 했습니다.

보이저 2호 실종 사건은 최근 우주 분야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BBC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우주선이 실종됐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쌍둥이 탐사선인 보이저 1·2호는 인류의 우주 탐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류를 달로 보낸 아폴로 탐사 계획이 끝난 뒤 NASA 과학자들은 지구 바깥쪽 궤도를 도는 외행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 탐사를 다음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른바 ‘그랜드 투어(위대한 여행)’이라고 불리는 프로젝트에서 보이저 계획이 탄생했습니다. 보이저 1호와 보이저 2호는 목성·토성을 각기 다른 경로로 탐사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보이저 1·2호는 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고 이 과정에서 태양과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더 멀리 빠르게 날아가는 ‘중력도움’이 얼마나 유용한지도 입증합니다. 토성 탐사에 성공한 두 탐사선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보이저 2호는 토성을 지나 천왕성·해왕성을 최초로 근접비행했고,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관측한 뒤 아예 최초로 태양계의 경계를 넘은 물체가 됐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비밀 프로젝트

보이저호에 실린 금속 레코드판으로 자연의 소리와 음악, 55개 언어 인사말이 담겨 있다. /NASA 제공

여기에는 NASA 과학자들이 숨겨놓은 비밀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NASA에 들어가는 막대한 예산을 삭감하기 위해 수많은 계획을 축소하거나 통폐합·폐지했습니다. 보이저 계획도 같은 운명이었죠. 하지만 NASA JPL 과학자들은 여러 탐사 계획을 축소하면서도 보이저 1·2호에는 당시 최고의 기기와 기술을 집약합니다. 겉으로는 토성이 최종 목표라고 정부 관계자들을 안심시킨 뒤, 훨씬 더 미래를 내다본거죠.

당시 계획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최소한 천왕성까지는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입을 모습니다. 실제로 보이저 2호가 토성을 통과하자 NASA는 정부에 “새로 탐사선을 쏘는 것보다 보이저 2호 운용을 연장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논리로 예산을 받는 데 성공합니다. 보이저 2호가 천왕성을 통과한 것은 1986년, 또다시 계획이 연장돼 해왕성을 통과한 것은 1989년 2월입니다. 그 후로 34년이 지난 지금도 날아가는 것을 보면 NASA가 보이저 1·2호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보이저 1·2호의 현재 임무는 성간 탐사입니다. 태양계를 벗어나 다른 별들의 고장으로 가고 있는 것이죠. 관성 때문에 무언가에 부딪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끝없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운명입니다. 문제는 동력입니다. 보이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열전발전기(RTG)’로 동력을 얻습니다. 플루토늄-238이 자연 반감되면서 발생하는 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자력 배터리의 일종입니다. 플로토늄-238의 반감기는 87년으로, 전력 생산량은 매년 약 4W씩 줄어들고 있고, 이미 절반 이상 소모됐습니다.

NASA는 어떻게든 보이저 2호와의 통신을 유지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선체 전압 안전장치를 위한 예비 전력을 통신에 끌어다 쓰고 있고 과학 관측 장비도 순차적으로 중단할 예정입니다. 예비 전력 사용으로 2026년까지는 일단 통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NASA는 올해 보이저 1호도 예비 전력을 가동할 계획입니다. 물론 언제 보이저 1·2호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류 지평 넓힌 보이저

2018년 보이저 2호가 촬영한 해왕성. /NASA

보이저 계획은 인류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혔습니다. 1990년에는 보이저 1호가 명왕성 근처에서 방향을 지구 쪽으로 돌려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저명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자신이 촬영을 제안한 이 사진에 나타난 지구에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의 아주 작은 무대”라며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쌍둥이 보이저에는 관측 장비는 물론 골든 레코드가 실려 있습니다. 외계 생명체를 만날 경우를 대비해 지구의 자연과 소리, 음악, 인류의 모습, 55개 언어 인사말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우주인에게 인류와 지구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려주는 것이 보이저 1·2호가 될지도 모릅니다. 보이저는 약 30만년 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인 시리우스까지 날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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