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에도 수백km 종주 산행 "하루 30km는 걸어야 걸은 것 같아"

서현우 2023. 8. 17. 07: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산지컬 100] 78세에 장거리 종주 이상주

극한 산행은 단순히 체력만 좋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산을 대하는 올곧은 태도와 이념, 탄탄한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춰야만 안전히 산행을 마칠 수 있다. 넷플릭스 인기 예능 <피지컬100>에서 피지컬이 뛰어난 이를 탐구했듯, 월간<山>은 '산지컬'이 뛰어난 이들을 만나본다. - 편집자 주

이상주씨는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산행을 즐기는 철인이다.

"어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걷는대요?"

집요하게 산을 오르는 이들, '산지컬 100' 연재에 대한 반응은 꽤 다양하다. 본 받아야 할 산행 철학이라든지, 나도 저렇게 몸 관리를 하고 싶다든지 긍정적인 반응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반응도 있다. 몸이 상할 것이 뻔한데 왜 그렇게 걷느냐는 것이다.

장거리가 몸을 상하게 한다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대부분의 장거리꾼들은 꾸준히 훈련하고 단련하기에 무릎이나 발목 모두 큰 이상은 없다고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체력 조건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또 워낙 지친 상태에서 산행하다 보니 발목을 삐는 정도의 사고는 다반사다. 그래서 꾼들 사이에선 통상 갓 입문한 시점을 기준으로 길어야 5~6년 정도를 수명으로 본다. 그 이후로는 누적된 데미지 탓에, 혹은 계속 장거리를 걸을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는 생활이 버거워서 그만 둔다.

이씨는 힘들때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허벅지를 스틱 대신 짚어가며 오른다. 일반적인 등산상식에 맞지 않지만, 그는

베트남에선 국군 살리던 '병리실험사병'

이런 시점에서 봤을 때 이상주(78)씨는 여러모로 뜨악하다. 일단 팔순이 코앞인 78세 고령의 몸으로도 수십, 수백km의 산행을 지금도 너끈히 해내고 있다. 장거리 종주 산악회 J3클럽에 가입한 게 13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현역이란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 절로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걸으시냐"는 말이 터져 나오는 스타일이다. 살이 벗겨지고, 피가 나고, 진물이 터지고, 발톱이 깨져도 걷는다. 백두대간은 3번, 정맥은 2번 완주했다. 금요일에 퇴근한 이후 경기도권 산길을 60km 정도 엮어 탄 뒤 토요일 늦은 오후에 '퇴근'하기도 한다. 어디서 놀다 들어온 것 아닌가 의심할 수도 없게끔 이 과정을 자신의 산악회 닉네임을 딴 게시판 '노송(다음 카페 J3클럽)'에 고스란히 적어 놨다. 서초구에 위치한 매헌시민의숲에서 그를 만났다. 그리고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걸으시냐"고.

"보통 70대만 넘어도 급격히 다리가 약해진다고 하던데, 지금도 이렇게 장거리 산행을 즐기시는걸 보면 유전자 자체가 남다른가 봅니다."

"글쎄요. 일단 어릴 때 잘 먹고 자란 게 좀 도움이 된 것 같긴 합니다. 경기도 포천이 고향인데 마을 사람들 모두 저를 '도련님'이라 불렀어요. 할아버지가 지금으로 치면 군수였거든요. 아버지도 자수성가해서 마을 물류를 쥐고 계셔서 부유한 편이었죠. 그때 당시에 쌀밥에 고기 먹을 수 있던 사람은 몇 없을 겁니다."

인상은 분명 단단하고 낯가림이 심한, 고집불통 노인일 것만 같은데 막상 말문이 열리자 자상한 동네 할아버지가 됐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따리들이 곁가지로 쏟아져 나왔다. 그는 유년 시절을 "내성적이고, 개구쟁이. 평범한 그 나이 아이. 공부는 싫고, 운동이나 노는 건 좋았다"고 요약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이씨가 태극기 앞에 섰다.

"그러다가 군대를 갔는데 베트남전쟁이 터졌어요. 자원해서 파병 갔죠."

"베트남전 참전용사셨군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셨습니까."

"괜히 거창하게 띄울 필욘 없어요. 외화벌이도 할 겸, 전쟁에 대한 어린 호기심에 간 거였거든요. 게다가 원래 맹호부대였는데 지원부대인 십자성으로 배속이 바뀌어서 처음엔 엄청 불만이 많았어요. 혈기가 왕성할 때라 비전투 요원이 된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었거든요."

"십자성부대요? 이름이 꽤 낯선데 어떤 임무를 수행하신 건가요."

"병리실험사병이라고 1년 동안 병원에 있었습니다. 베트남 기후가 덥고 습하니깐 세균검사 같은 걸 평시에도 철저히 해둬야 했거든요. 주로 혈액이나 혈압 검사를 하고 응급환자 발생하면 간단히 처치해서 큰 병원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죠. 시신도 많이 처리했어요. 혈액형이 안 맞는 피를 수혈하고 있던 걸 눈치 채고 조치해서 한 병사 목숨을 살렸던 적도 있었죠.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땐 밥도 잘 못 먹어서 3일에 한 번 화장실 가고 그랬어요."

혹독한 베트남에서 돌아와선 다시 혹독한 산업현장에 몸을 던져야 했다. 전국 곳곳을 돌며 판금 관련 일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하루를 빠듯하게 사는 데 익숙해진 탓에 지금도 은퇴 생활을 즐기지 않고 전기제품을 조립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쉬면 바이오리듬이 다 깨지고 골머리만 아파진다"며 웃었다. 사람이 놀게 되면 계획이 없어지고, 그러면 어느덧 삶의 방향 자체를 잃어버린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 국립공원 연속 산행 200km 중 천왕봉에 올랐다

일상을 운동화하다

"산 얘기를 좀 할까요. 산행 경력은 어떻게 되십니까?"

"젊었을 땐 산에 잘 안 갔어요. 1년에 2~3번 갔을까? 대신 한 번 가면 무박, 8시간 이상 코스가 기본이었죠. 제가 걸음이 좀 괜찮은 편이니 자꾸 일반 산악회 가면 '대장 좀 맡아 달라'고 귀찮게 해서 그럴 때마다 다른 데로 옮겨버리고 그랬죠. 그러다가 이제 제대로 산을 좀 타봐야겠다 싶어서 가입한 게 장거리 산악회 J3클럽입니다."

J3클럽에서의 첫 산행은 2010년 1월 1일 소백산 죽령~상월봉 '왕복' 산행이었다. 언론에선 '역대급 추위'라는 날에 약 30km의 산길을 주파, 젊은이들 상당수를 제치고 5번째로 완주했다. 그리고 이어 2월엔 월악산 환종주를, 3월엔 마창진대종주를 했다.

"사람들 반응이나 표정이 딱 이거였어요. '뭐 저런 노인네가 다 있어'. 30~40대들 사이에서 65세 먹은 할아버지가 더 빨리 가니깐 기가 찼던 거죠. 60대까지도 식스팩이 선명했어요."

"몸 관리 비결은 뭡니까?"

"젊었을 땐 운동 많이 했죠. 헬스도 꾸준히 했지만 지금은 뇌압 때문에 무거운 무게는 못 들겠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일상을 운동화했어요. 그냥 걸어도 손에 힘을 꽉 주고 걷는다든지, 계단을 오를 때면 앞부리로만 디뎌서 다리 뒷근육을 강화하는 식이죠. 주 4일, 10km씩 걷고요.

또 소식장수란 말이 있잖아요? 제가 젊었을 땐 밥도 반 공기 하나 간신히 먹고 그랬거든요. 이런 점이 두루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베이스 위에 산행을 꾸준히 쌓았고요."

한창 몸이 좋아 산에 다니던 시절 그의 주말 일정은 이랬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사당능선을 타고 관악산을 오른 뒤 서울대 쪽으로 하산, 방배동 집으로 돌아오면 오전 9시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다시 도봉산으로 가서 리지 등반을 즐겼다. 지금은 출입이 금지된 자운봉과 칼바위를 가장 좋아했다. 그렇게 도봉산 바위를 만지다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

울진에서 태안을 잇는 동서트레일이 최근 개발되고 있는데, 이씨는 이미 이 길을 '서동종주'란 이름으로 주파한 바 있다.

참나무가 한 번 살려준 목숨

무엇보다 놀라운 건 나이가 들어도 등정 페이스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17년 10월 300회 천왕봉 등정에 성공한 데 이어 2020년 2월에 400회, 2021년 6월 500회, 2023년 3월에 600회를 달성했다.

산을 좋아하는 마음이야 대부분의 산꾼들이 공감할 터다. 그런데 그 '좋아함'의 수준을 어디까지로 정할지에 대해선 많은 것들과 타협해야 한다. 단지 이씨는 정말 마구마구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것뿐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지금 사는 인생은 덤으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봉산에서 바위를 타다가 평소에는 쉽게 건넜을 바위 사이를 폭 뛰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다이빙선수들이 공중제비 돌 듯 확 돌았어요. 제 의식은 거기서 두절됩니다. 나중에 병상에서 눈 뜨니 주머니 속 폴더 폰은 박살이 나 있고, 마치 짐승의 발톱에 당한 듯 6줄의 쫙 긁힌 상처가 남았었죠.

이씨의 발은 상처투성이다. 하지만 그런 고통도 그의 걸음을 막진 못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지점에서 추락하면 으레 떨어져 죽는 바위 표면이 아니라, 어떻게 기적적으로 참나무 위에 떨어져서 살아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몸이 회복된 후 그곳에 가보니까 제가 떨어진 나무의 가지가 다섯 개 정도 죽어 있었습니다. '아 이 가지들이 나대신 죽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봉산 갈 때마다 이 나무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산에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다. 그래서 몸에 훈장처럼 남은 상처들이 많다. 대부분 바위에서 떨어져 얻은 상처다. 왼쪽 허벅지는 7년 전 바위에서 떨어져 마비상태다. 꼬집어도 아무 느낌이 없단다. 발톱 10개는 성한 곳이 없고, 장거리를 걷다가 발바닥 피부가 불어터지는 건 일상이다. 왼쪽 팔에도 흉터가 남았는데 꿰매야 할 상처를 그냥 놔두니 절로 붙었다고 한다. 이토록 상처가 가득한데, 그런데도 산에 간다.

"산이 체질이에요. 아무리 고되고 힘들고 속된 말로 빌빌거리다가도, 산에만 가면 힘이 나요. 어떻게 보면 마약 같아요. 한 번 빠지니 나오기가 힘든 거죠."

"그런데 유독 장거리 산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뭡니까?"

"유명한 영화 대사 있잖아요. '살아 있네'라는 거. 딱 그거죠. 다른 이유는 없어요. 걸으면 제가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또 긴 코스를 괜찮게 걸으면 다른 의미로 나 아직 '살아 있네'하는 거죠. 몸이 이미 장거리 맞춤형으로 설계돼 10km 걸으면 기별도 안 가요. 최소 30km는 걸어야 '오늘 좀 걸었다' 싶죠. 2년 뒤 80세를 기념해서 백두대간 일시종주도 계획 중입니다."

이씨는 입이 짧은 탓에 배낭이 단출하다. 그는

그가 걷는 이유, '의義'

상처에 얽힌 무용담을 듣던 중, 유독 심장에 가까운 곳에 난 상처가 눈에 띄었다. 이에 관해 묻자 그는 "유일하게 산에서 다친 것이 아닌 상처"라고 했다.

"어느 날 친구 공장에 놀러갔는데 깡패들이 공장 직원들을 붙잡곤 행패를 부리고 있더라고요. 2층에서 바로 맨발로 뛰어내려서 항의했죠. 그러니 그 깡패들이 옆에 있던 껌 뗄 때 쓰는 스크래퍼 있죠? 그걸로 가슴을 찔렀어요. 피가 분수처럼 나오니까 그걸 보고 죄 도망가더라고요. 속 10바늘, 겉 10바늘 총 20바늘 꿰맸습니다. 의사가 0.5mm 더 들어가면 죽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는 "태생적으로 불의를 못 보는 성격"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도 '의'로 간다. 장거리 코스에 동행 요청을 하면 기꺼이 시간을 낸다. 걷는 도중 물집이 잡히고, 다리가 뻐근해져도 아무 말 없이 같이 걸어준다. 지난 6월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해인사로 옮겨진 길을 따라 걷는 이운길 518km를 소속 산악회 방장인 배병만씨의 요청으로 같이 걸었을 땐 발 절반이 물집으로 벗겨지고 피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아픈 내색을 일절 하지 않고 끝까지 다 갔다. "그렇게 아프면 도중에 탈출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자 "내가 같이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걸 철회할 순 없지 않느냐?"고 시큰둥하게 반문했다. 사람과의 의를 얼마나 지독하게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사람이 중요하지 산이 중요합니까. 어느 해 겨울 시산제날에는 저체온증 환자를 대피소에서 맨 몸으로 30분을 끌어안아 살린 적도 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는 배낭에 꼭 버려도 괜찮은 경량 패당 하나를 챙겨요. 이런 환자들한테 주려고요. 괜히 비싼 것 챙기면 돌려받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웃음) 그리고 식량을 산행 끝나도 남을 정도로 넣어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 있죠."

말을 마치는 그의 옆에 놓인 파란 배낭에 우연찮게 시선이 머문다. 그곳엔 파란 복조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그는 "내가 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딴 사람들에게 복을 주기 위해 달아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산행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으로도 옆 사람을 도와줄 때를 꼽았다. 영화 <잭 리처>가 순간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이 씨는 바위에서 추락한 탓에 왼쪽 허벅다리가 무감각하다.

등력 자랑하려는 산행은 몸을 망친다

노하우를 전해 듣는데 무척이나 독특하다. 스틱은 쓰지 않고 대신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허벅지를 짚으면서 간다, 배낭 허리끈을 풀고 다닌다, 피곤하면 운행 중 믹스커피를 물도 타지 않고 씹어 먹는다, 하산할 땐 30%만 체중을 싣고 70%는 허공에 떠있는 느낌으로 갈지자 보행하면 빠르다 등이다. 등산 상식으로는 스틱을 써야 무릎 보호에 좋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넘어질 때 위험하고, 배낭 허리끈을 매야 하중이 분산돼 어깨 부담이 줄어든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날라리라고 해요. 그냥 형식에 갇히지 않고 제 스타일대로, 자유분방하게 다니는 겁니다. 이게 제 몸과 성격에 잘 맞아요. 사실 사람들 몸이나 체력, 성격이 다 다른데 어떻게 산행 스타일에 정답이 있겠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뭐 어떻게 걸어야 한다, 뭐가 정석이다 이런 식으로 조언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왼손잡이한테 오른손으로 밥 먹으라고 하는 느낌이랄까? 노하우를 알려줄 순 있지만 그걸 따라하고 말고는 전적으로 개인이 판단할 일이죠. 그런데 일부 대장들은 이 노하우를 강제합디다. 그럼 안 되죠."

또 특이한 건 그가 산행을 아무리 해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성취감이란 목적의 설정과 달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장거리는 그렇게 걸어선 안 된다"고 했다.

"목적이 세워지면 그건 성과주의적인 산행이 됩니다. 완주가 성과가 되면 그 성과를 자랑하게 되고, 자랑하려는 산행이 되면 몸이 망가져요. 물론 완주를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완주를 성과로 목적화하면 문제가 된다는 거죠."

"어렴풋이 알 듯 말 듯한 말씀이네요. 그런데 그런 성취감을 못 느낀다면, 무슨 마음으로 산에 가시는 건가요?"

"마음의 수양이죠. 저는 산에 갈 때 육체의 건강을 키운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산행을 운동으로 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산행이 운동이 되면 기록측정의 스포츠가 돼버리거든요. 저는 걸으면서 정신수양을 하려고 노력해요. 이번 주에 내가 했던 잘못, 내가 괜히 부렸던 성질 같은 걸 자기반성하죠.

그리고 자연 자체가 그런 반성을 불러일으켜요. 어머니와 같은 산에 폭 빠져 있는데 당연히 모났던 마음들이 둥글어질 따름이죠.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거랑 똑같아요. 사랑에 빠질 때 나한테 잘해 준다거나 어떤 조건을 따지면서 빠지지 않잖아요?"

"남을 깔보지 마라"

이상주씨는 하드코어한 장거리 산행을 하는 동호인들 중에서는 현역 최고령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재야의 고수가 또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은 소속된 J3클럽 내에서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요즘 세태가 불만이다.

"요즘은 산에서 배려란 게 없어졌어요. 모두 자기 위주로만 다니려고 하고, 자기 프로젝트, 자기 기록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남과 같이 걸으려는 사람들이 없어요. 죽음이 가까워지니 그런 게 아무 쓸모 없다는 걸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산에선 기록이 아니라 사람을 남겨 와야 해요.

그런 의미로 젊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첫 번째는 자신감을 가져라, 두 번째는 남을 먼저 생각하라, 세 번째는 남을 깔보지 마라입니다. 특히 자기가 좀 산을 잘 탄다고 남을 업신여기고 기를 죽이는 사람들을 숱하게 봤어요. 누가 처음부터 그렇게 산을 잘 탑니까? 그렇게 남을 무시할 거면 산을 혼자 다녀야죠. 이 극한의 세계에서도 예의는 있어야 되고, 그게 한국의 산입니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