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낳는 기계였네"…상처 어루만진 천사의 손길[최기자의 동행]
(용인=뉴스1) 최서윤 동물문화전문기자 = "새끼 낳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동물보호단체 '코리안독스' 활동가들은 최근 레인보우쉼터에 입소한 강아지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열악한 환경에서 새끼만 낳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을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 단체는 지난달 충남 보령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250여 마리 강아지들을 구조했다. 대부분 몰티즈(말티즈), 포메라니안 등 소형견들이다.
구조한 강아지들의 상당수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이 안 보이고 이빨이 없는 것은 물론, 잦은 출산과 오랜 뜬장 생활로 다리가 뒤틀려 있기도 했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코리안독스는 경기도수의사회와 파란 천사라 부르는 내추럴발란스 블루엔젤봉사단, 유어사이드봉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지난 13일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레인보우쉼터를 찾았다.
◇폭염 속 웃으며 봉사…개체마다 '기록'하고 동물등록
이날은 30도가 넘는 찜통더위를 기록했다. 폭염으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짜증이 날만도 했다. 하지만 쉼터에 모인 사람들은 누구 하나 찡그리지 않고 웃는 얼굴이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 전 이성식 경기도수의사회장과 윤성창 블루엔젤봉사단장이 각자의 역할과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50여명의 사람들은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봉사자들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기록'이었다. 차트를 만들어 아직 이름도 정하지 못한 강아지들에게 숫자를 부여했다. 암수 여부, 몸무게, 특이사항 등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사진도 찍었다. 유기동물, 길고양이, 구조한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개체가 뒤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수의료 봉사로는 70여마리 암컷 강아지들의 중성화 수술과 150여마리 강아지들의 예방접종이 진행됐다.
경기도·용인시수의사회 뿐 아니라 벳아너스 회원 동물병원인 24시 넬동물의료센터, 한국수의영양학회에서 지원 나온 의료진 등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수술과 접종을 이어갔다.
수술이 완료된 강아지는 수술 부위에 색소를 주입하는 이른바 '문신'으로 마무리했다. 실수로 두 번 수술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지자체가 독려하고 있는 동물등록도 진행했다. 윤상근 용인시수의사회장은 강아지들에게 내장형칩을 삽입하고 리더기로 식별이 잘 되는지 확인했다.
블루엔젤봉사단과 유어사이드봉사단원들은 강아지들을 옮기거나 수술 부위 미용을 맡았다. 핀아봉사단은 구슬땀을 흘려가며 견사 청소를 하고 강아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루빨리 좋은 가족 만나길 바라"
강아지들이 마취에서 깰 때까지 머무는 회복실도 분주했다.
마취를 담당한 김동근 수의사가 강아지들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그는 "쉬는 날 없이 나와서 봉사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강아지들을 보고 있으면 휴가 온 기분이 들고 힐링이 된다"고 답하며 활짝 웃었다.
서정주 수의사는 몸이 조금 약해보이는 강아지에게 수액을 놓았다. 그는 "집에 이미 여러 마리의 유기동물을 데려와 키우고 있는데 여기 있는 강아지들을 보니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좋은 가족을 만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 안혜경과 김가영은 혹시라도 강아지들이 마취에서 깨지 않을까봐 걱정하며 연신 등을 쓰다듬었다. 이를 본 한 수의사는 "너무 안 깨면 인중을 눌러주는 방법이 있다"며 안심시켰다.
봉사가 마무리될 무렵 '세이브 어스 챌린지'도 진행됐다. 세이브 어스 챌린지는 반려동물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려 보호소 동물들을 돕고 심장사상충 예방을 독려하는 캠페인이다. '한국조에티스'와 '한국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에서 후원하고 있다.
배우 고원희와 김가은, 한승연과 이웅용 훈련사 등은 캠페인에 참여해 심장사상충 예방을 강조했다.
이날 심장사상충 검사 결과 음성으로 판명된 강아지들에게는 1년에 주사 한번으로 질병 예방이 되는 프로하트를 투약했다. 일부 양성이 의심되는 강아지들은 향후 이미티사이드로 치료할 계획이다.
추가로 중성화 수술이 필요한 강아지들은 조만간 또 다른 수의사 봉사모임인 '버려진 동물들을 위한 수의사회'(버동수)에서 재능기부를 이어갈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을 받은 강아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입양'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버텨온 강아지들이 안정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한 상황.
김복희 코리안독스 대표는 "아직 날씨가 더우니 한달이라도 강아지들을 임시보호할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며 "입양 조건이 있다면 보호소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니 와서 보시고 소중한 가족을 맞아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해피펫]
news1-10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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