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주취자의 양면적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

정용근 대전경찰청장 2023. 8.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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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개소 고대
정용근 대전경찰청장

사람마다 타인과 구분되는 고유한 성격과 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본래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인격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이를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페르소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술에 취하면 폭언하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하는 사람이 있다. 평소에는 공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지만, 술만 먹으면 평소와는 다르게 폭력이란 가면을 쓰고 이전과 전혀 다른 페르소나를 보인다.

반대로 술을 먹으면 얌전해지는 페르소나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폭력적인 성향에 비해 덜 위험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술에 만취한 상태로 귀가하던 주취자가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혹한의 추위의 노상에서 잠들었다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맞은 일상 회복과 여름 휴가철 등으로 술자리가 늘면서 경찰의 주취자 대응 업무도 크게 늘고 있다. 매일 밤 지구대·파출소는 주취자와 전쟁을 치른다고 할 정도로 주취자 관련 다양한 신고 처리에 많은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전지역에 1만 9천여 건의 주취자 관련 신고가 접수된 것을 감안하면 매일 50건이 넘는 주취자 신고 처리를 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에서는 이런 수많은 주취자 신고처리 때문에 긴급하게 경찰의 도움이 필요한 선량한 시민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먼저 술에 취해 반복적인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폭력적인 페르소나)에 대한 경찰 대응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취 폭력범 척결이다. 주취 폭력범 즉, 주폭이란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술에 취하기만 하면 상습적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폭력을 가하는 사람을 말한다. 주폭 척결은 2010년 충북경찰청에서 처음 시작되어 주폭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과 큰 지지를 받으면서 전국으로 확산했다. 당시 충북경찰청은 경찰관의 주취자 처리 관련 업무량 감소(84.7%)와 주폭 척결에 대한 도민들의 호응도(91.6%)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설문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때 필자는 충북 음성경찰서장으로 근무하였는데 주취자 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해당 신고 외에도 과거 동일 신고 이력, 주민 여론 등과 같은 그간의 전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엄정하게 대응했다. 이런 강력한 대응 기조는 대전경찰청장인 지금까지도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주취자 폭력의 엄정한 대응은 경찰관의 주취자 관련 업무량 감소를 통해 보다 시급하고 위험한 곳에 경찰력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결국 시민의 안전과 행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폭력성이 없어 얌전하지만, 보호조치가 필요한 주취자(얌전한 페르소나)에 대한 대응이 있다. 노상에 쓰러져 있는 주취자가 의식이 없다는 신고가 대표적이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경찰관은 현장에 출동하여 단순 주취 상태인지 치료를 해야 하는 상태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지난 5월 인천에서는 술에 취한 사람이 거리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집에 데려다주었으나 이틀 뒤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고가 있었다. 당시 유족은 코피를 흘렸으면 병원에 데려가야지 혼자 사는 집에 데려다 줄 수밖에 없었는지 경찰 대응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안타까운 사고는 우리 지역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개소가 필수적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22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충청권에서는 충남과 충북에서 이미 운영하고 있지만 대전만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충북은 필자가 충북경찰청장으로 근무하면서 충북도청, 청주의료원, 자치경찰위원회 등과 협업해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개소한 바 있다. 대전에서도 조속한 개소를 위해 지자체·의료기관 등과 적극적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주취자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느 특정 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실효적인 대책이 나오기도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이제는 더 이상 늦지 않게 경찰을 비롯한 모든 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폭력적이거나 얌전한 페르소나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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