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바이파티산
인구소멸, 청년문제, 연금개혁 등
더 미루면 후손들 재앙적 위기에
세종대왕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왕이다. 박학다식했고 열정이 넘쳤으며, 애민정신이 투철했다.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학문을 진흥시켰으며 우수한 인재를 길러냈다. 과학기술을 진흥시키고, 4군6진을 개척하여 국경을 넓혔다. 훈민정음은 민족사의 자랑이고 긍지이고 영광이다.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의 가장 훌륭한 업적이지만 공법(貢法) 시행도 이에 못지 않다. 기존의 조세제도인 과전법은 관리가 논밭을 둘러보고 수확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양반이나 권력자에게는 적게 매기고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무겁게 매기는 등 폐해가 많았다. 이를 개선한 것이 공법으로 땅의 비옥도와 농사의 풍흉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세금을 내도록 하였다.
세종은 공법을 시행하기 위해 17년이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신하들이 반대하자 직접 토론과 논쟁을 하고, 양반과 관리, 백성 17만2806명이 참여하는 찬반 여론조사도 벌였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시범실시한 뒤 1444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에 이른다.
580년 전의 얘기를 꺼낸 것은 요즘 나라의 모양새가 하도 답답해서다. 국정과제들이 쌓여 있는데도 그걸 챙기고 해결하려는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눈 돌릴 틈도 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눈앞에 안개가 뿌옇게 서려 있는데도 민생과 무관한, 편 가르기와 말 싸움, 정쟁만 일삼고 있는 것이다.
작금 대한민국에는 절박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인구소멸과 청년 일자리, 연금문제, 기후변화, 남북통일 등 모두 나라의 미래와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과제들이다.
인구문제만 해도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은 0.78명으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0.7명대에 진입했다. 출생아 수도 24만9천명으로 나타났다. 인구감소는 학교 폐교와 산업현장의 인력 부족, 지방소멸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위기를 불러왔다. 군인 숫자도 현재 50만명에서 머지않아 20만이나 10만명 선으로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청년문제도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어 연애와 출산, 결혼을 포기한 '3포세대', 더 나아가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 꿈과 희망까지 모두 포기한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2055년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국민연금, 남북통일에 대한 논의와 준비, 사교육 문제,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경제적 대응 등은 국민 모두가 대안과 해결을 열망하는 과제들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따른 외교·안보·경제 문제, 가계와 자영업 부채, 부동산 문제 등도 절박한 사안들이다.
요즘 미국 관련 뉴스에 '바이파티산(bipartisan)'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초당적' '양당일치'라는 뜻인데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이 함께 국정과제들을 풀어가는 것이다. 양당은 인프라에 600조원을 투자하는 법안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기 위한 법안, 우크라이나에 51조원을 지원하는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초당적으로 중국에 반도체와 양자컴퓨팅, 인공지능(AI) 3개 분야 투자를 규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결의안도 채택했다. 싸우고 경쟁하면서도 국익을 위해 여야가 대화, 소통, 협조하며 할 일은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 여당과 168석의 거대 야당을 보면 국민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문제의식도 없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국정과제들은 대부분 시급을 요하는 사안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이 어려워지고, 해결한다 해도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다.
세종대왕이 신하·백성과 소통하며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법은 조선조 500년 동안 세금을 거두고 국가재정을 유지하는 근간이 되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더 이상 국정과제들을 외면하지 말라. 더 미루고 방치하면 이 땅의 후손들은 헤어날 수 없는 재앙적 위기에 휩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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