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참상이 남긴 메시지
호상의 반대편에 참상(慘喪)이 있다. 사람이 뜻밖의 사고로 제 명에 죽지 못하는 일이나, 부모보다 자손이 먼저 죽음을 이름이다. 이 또한 기준 정하기가 애매하다. 인류는 오래 살게 됐다는 데 참상은 늘어난다. 자살률이 날로 높아지는 것은 말할 것 없고 사고사와 변사(變死)가 끊이지를 않는다.
전 지구가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지옥이란 표현이 나올 만큼 자연재해를 겪은 올해는 특히 참상에 대한 느낌과 자각이 남달랐다. 전쟁을 치르는 것도 아니고, 내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왜 사람들이 퍽퍽 죽어 넘어지는지 아뜩해질 때가 있다.
천재(天災)인지 인재(人災)인지 관재(官災)인지를 떠나서 한 사회의 구성원이 비정상적으로 죽음을 맞는 일이 늘어나는 건 위험 신호다. 이미 10여년 전에 이런 조짐을 내다보고 걱정했던 이가 강준혁 선생이다. 한국 문화기획자 1세대로 사심 없이 우리 문화의 구석구석을 어루만져 일으켜 세웠던 그는 예순 일곱,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작스레 눈을 감았다.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내다본 듯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는 참상의 문제를 다룬 유고(遺稿) 한 편을 남겼다. 한마디, 한 구절이 다 절절해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준 유언이 아닌가 싶다.
강준혁 선생은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들은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반성하게도 한다고 했다. 이러한 많은 죽음들이 던지는 메시지들을 우리는 유심히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바로 해석하려고 노력해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사회적 타살이 늘어나는 나라에서 사는 국민이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는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이 던지는 메시지를 옳게 해석하고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을까. 나날이 의구심만 늘어갈 뿐이다. 강준혁 선생은 이 질문에 대한 뼈아픈 각성과 대답을 촉구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왜곡과 얼버무림으로 거듭 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철없는 정치가들이 자기 무리를 모으기 위해 지역 간 갈등의 벽을 다시 세우는 모습을 우리는 빤히 보고만 있었을 뿐 아니라 동조하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쓰잘 데 없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피를 나눈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총칼을 서로 들이댔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신념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이 두 질문이 핵심이었다.
강준혁 선생은 문화에서 창조의 힘과 공익의 정신을 유독 강조했다. 이론을 앞세운 외국 유학파와 달리 이 땅이 길러낸 예술가를 존경하고,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일했다. 그는 공동선(共同善)을 이끌어낼 예술의 힘을 믿었다. 미래 세대가 이어받을 새로운 문화 토대를 일구려고 전력했다.
고인은 한국 사회에 자기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우겨대는 사람들이 늘어나 쓸데없는 갈등과 에너지 낭비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 됐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통일을 맞이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뒤따를는지 몸서리쳐진다고도 했다. 타계 10주기를 앞둔 선생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이 잇따르는 사회는 구성원을 환자로 만드는 암(癌) 병동과 같다. 양보 없는 주장과 편협한 생각들이 국민을 시한부 생명으로 내몰고 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듯이 살아가야 하는 나날이 사람들을 쓰러뜨린다. 호상보다 참상이 늘어나는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강준혁 선생이 남긴 메시지를 거듭 해석해야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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