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가신용등급 이어 은행권 전반 하향 ‘공포’… 세계경제 먹구름

이지안 2023. 8. 1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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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치, 美 은행 70곳 신용등급 강등 경고
고금리 지속에 은행 실적 악화
JP모건·BoA 등 등급 하향 땐
동종 업계 연쇄 강등 불가피
S&P 2.5% 급락 등 시장 요동
中 성장률도 4%대 조정 잇따라
경기침체·부동산 디폴트 위기에
7월 은행대출 14년래 최저
미·중發 겹악재에 코스피 ‘휘청’

부동산업계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와 이에 따른 투자신탁사 위기, 소매판매·산업생산 위축 등 중국발(發) 전방위 위기 신호가 세계를 놀라게 한 와중에 1위 경제 대국 미국 은행권 부실 위험이 확산하고 있다. 이달 초 미 국가신용등급을 전격 강등한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15일(현지시간) 은행 70여곳의 신용등급 강등까지 경고하고 나섰다.

크리스 울프 피치 애널리스트는 이날 미 C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 대형은행) JP모건체이스를 비롯한 70개 이상의 은행 등급 하향 조정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는 은행업계 전반의 실적 악화가 예고된 탓이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업무를 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피치는 이미 지난 6월 미 은행산업의 건전성(영업환경)에 대한 평가를 ‘AA’에서 ‘AA-’ 등급으로 하향 조정했으나 고금리에 따른 은행 수익성 악화가 지속할 것으로 보여 추가 하향 조정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울프 애널리스트는 설명했다.

업계 건전성 등급이 ‘AA-’에서 ‘A+’로 또 한 단계 낮아지면 현재 AA- 상태인 JP모건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대형은행들의 신용등급 강등도 불가피하다. 특정 은행이 업계 건전성 등급보다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산 기준으로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과 BoA의 등급이 강등되면 모든 동종 기관 등급의 하향 조정을 함께 고려해야 해 뱅크 유나이티드 등 현재 BBB 등급의 은행들은 아예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울프 애널리스트는 지적했다.

높은 금리는 일반적으로 은행의 이자수익을 높이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자금조달 비용과 대출자의 디폴트 위험도 함께 높여 되레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피치와 더불어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도 지난 7일 이러한 이유로 M&T 뱅크 등 미 중소은행 10곳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으며, 뉴욕 멜론 은행·US 뱅코프·스테이트 스트리트·트루이스트 파이낸셜 등 대형은행 6곳을 신용등급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고 밝혔다.

울프 애널리스트는 “(이들)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이 기정사실로 된 것은 아니지만, 현실화한 위험이라는 것을 시장에 알리려는 의도”라고 이날 발언에 대해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의 한 전력 장비 업체를 방문해 ‘바이드노믹스, 미국에 투자’라고 적힌 현수막을 배경으로 자신의 경제 성과에 대해 홍보 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은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경제 정책 중 하나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발효 1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밀워키=UPI연합뉴스
시장 반응은 예민했다. 이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은행 지수는 2.5% 하락해 한 달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JP모건 주가는 4% 가까이 떨어졌고, BoA·골드만삭스·씨티그룹·모건스탠리 모두 1.7%에서 2.1% 사이로 하락했다.

은행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 고금리가 당분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불안을 더 키웠다. 미국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이 낮아지고 있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은 잦아들고 있지만, 현재의 고금리(5.5%)가 오랜 기간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일부 은행 부실이 미국 경제 전반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은 최근 각종 위기 신호가 중첩 중인 중국과 달리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매우 견고한 상태다.

이날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한 6964억달러(약 932조원)로 집계돼 4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전날 발표된 7월 중국 소매판매가 1년 전에 비해 거의 반토막난 것과 대비된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올해 미국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치를 4.1%에서 5.0%로 상향 조정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3.5%로 점쳤던 성장률을 이날 소비 지표 확인 이후 1.5%가량 높여 잡은 것이다.

반면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JP모건은 중국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5.0%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5월 초까지만 해도 6.4%를 예상했지만, 석 달 사이에 대폭 하락했다. 중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5% 전후로 목표하고 있다. JP모건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경우 중국의 내년 성장률 역시 4.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바클레이즈도 성장률 전망치를 0.4%포인트 낮춘 4.5%로 조정했고, 일본 미즈호파이낸셜그룹도 5.5%에서 5%로 낮췄다.

중국 상하이 건설현장에서 15일 작업자들이 공사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대형 건설 사업자인 비구이위안이 부도 위기에 몰리고, 이에 따른 여파가 신탁회사 등 금융계로 전이된 데다 소매판매·산업생산 등 경제지표마저 부진하게 나와 경제 전반에 걸친 위기설이 확산하는 중이다. 상하이=EPA연합뉴스
중국 대형 건설시행사인 비구이위안이 지난 7일 달러 채권에 대한 이자 2250만달러(약 300억원)를 내지 못하면서 건설업계와 신탁회사 등 금융계로도 위기가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가 너무 커진 탓이다. 비구이위안은 16일 상하이 증시 공시에서 “현재 회사채 상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여기에 소매판매·산업생산·실업률 등 경제지표마저 부진하게 나왔다. 더구나 지난달 은행 대출이 14년 만에 최저 수준을 찍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진입한 데다 수출도 감소하는 등 경제 전반에 먹구름이 드리운 상태다.

미국과 중국은 내수 및 외자 유치와 직결된 기준금리와 관련한 판단에서도 상반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이날 미국 연준 내의 금리 논쟁 기조가 “금리를 얼마나 올릴 것이냐”에서 “얼마나 오래 유지해야 하는가”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과거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 때 성급하게 금리를 내렸다가 두 자릿수 물가 상승을 경험한 탓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줄곧 기준금리를 올리기만 했고, 현재 상대적 안정세인 상황이지만 이를 중단하거나 인하할 판단을 유보한 상태라는 뜻이다.

반면 전날 중국 중앙은행은 일부 정책 금리를 전격 인하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소매 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미·중발 ‘겹악재’는 국내 증시까지 전이됐다. 16일 코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23.39포인트(2.59%) 내린 878.29로 장을 마감하며 5거래일 만에 다시 900선 밑으로 내려갔다. 외국인 홀로 163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하락을 주도했다. 코스피도 전 거래일 대비 45.23포인트(1.76%) 내린 2525.64에 마감했다.

이지안·서필웅·이도형 기자,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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