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월북 미군, 인종차별에 환멸… 망명 의사”

사건 한 달 만에 ‘불법침입’ 규정
인권 공세 맞불 카드 쓰려는 듯
美 “확인 불가… 안전 귀환 집중”

북한이 판문점에서 월북한 주한미군 소속 트래비스 킹 이병 사건을 망명 시도로 규정했다. 북·미 협상을 통해 추방 형식을 띤 송환 가능성을 남겨두면서 북한인권 공세에 맞불을 놓는 소재로 활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관련한 조선중앙통신사 보도’에서 “7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남조선 주둔 미군 소속 이등병 트래비스 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영내에 불법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관광객들 속에 끼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돌아보던 킹은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조미(북·미) 군부 접촉실과 경무관 휴게실 사이에서 고의적으로 우리 측 구역으로 침입했다가 근무 중에 있던 조선인민군 군인들에 의해 단속됐다”고 덧붙였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는 월북한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이 망명 의사를 밝혔다는 북한의 발표를 검증할 수 없다며 그의 안전한 귀환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공화국(북한)으로 넘어올 결심을 하였다고 자백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지난 7월 19일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킹의 할아버지가 킹의 사진 옆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AP연합뉴스

통신은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올 결심을 했다고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사건 발생 후 약 1개월 만에 처음 내놓은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는 이 기사가 게재되지 않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불법 침입’과 ‘자진 월북’ 사이에 약간의 입장차가 있다”며 “불법 침입 규정은 북·미 간 협상용으로 추방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분석했다. 또 ‘북한 또는 제3국으로 망명’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킹 이병의 망명 희망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제3국으로 보낼 경우 중립국을 표방하는 스위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간)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릴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3국의 북한인권 관련 압박에 맞서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북한의 발표에 대해 미 국방부 대변인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우리는 트래비스 킹의 안전한 귀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대변인은 “국방부의 우선순위는 킹 이병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라며 “우리는 가능한 모든 채널을 통해 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예진·유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