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제는 ‘기후플레이션’, 기후위기가 물가 흔든다

배동주 기자 2023. 8. 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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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깃집에서 상추가 사라진 건 7월 중순쯤이었다.

지난 6월 25일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시작한 장마가 한 달 동안 이어졌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 고물가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BBC 시사 프로그램 '뉴스 나이트'는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고물가 기획에서 기후(climate)와 고물가(inflation)의 합성어인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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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주 기자

고깃집에서 상추가 사라진 건 7월 중순쯤이었다. 지난 6월 25일 제주도와 남부지방에서 시작한 장마가 한 달 동안 이어졌다. 일조량 감소로 수확량이 줄면서 값이 뛰었고, 상추는 ‘금값’이 돼 사라졌다. ‘고기에 상추를 싸 먹어야 하는 지경’이라는 말마저 나왔다.

상추에서 시작한 농산물 가격 상승은 배추, 오이 등으로 옮겨갔다. 적도 부근 수온이 올라가는 이상기후인 ‘엘니뇨’ 심화로 장마철 쏟아진 비의 양이 증가, 서울 여의도의 121배에 달하는 농지가 침수하면서다. 곧장 찾아온 폭염으로 엽채류는 물러졌고, 또 금값이 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배추 소매 가격은 1포기에 6073원으로 한 달 전인 3858원의 약 1.6배로 뛰어올랐다. 장마철 생육 부진을 겪고 농경지 침수로 출하량이 급감한 대표 상품인 오이는 한 달 만에 3배로 가격이 뛰었다.

장마와 폭염은 농산물값 상승을 넘어 물가마저 흔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이미 농산물 소비자물가는 4.7% 올랐다. 매월 3번 진행하는 조사 중 마지막 조사에만 수해·폭염 여파가 적용됐음에도 약 5% 오른 것으로, 8월 소비자물가는 더 크게 뛸 전망이다.

문제는 전에 없던 장마, 전에 없던 폭염이 매년 반복 심화하고 있다는 데 있다. 장마와 폭염의 뒤에 지구온난화로 불리는 ‘기후 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북극의 고온으로 극지방 주위를 돌았던 제트기류가 한반도까지 늘어졌고, 장마는 북상 대신 정체됐다.

한반도는 자꾸만 더워지고 있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970년대 12.14도에서 꾸준히 올라 2020년대(2020~2022)에는 13.06도까지 상승했다. 사과로 유명했던 대구는 더는 사과를 재배하지 못하는 도시가 됐다. 연평균 강수량은 1198.89㎜에서 1341.60㎜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날씨 영향을 크게 받는 농산물 가격의 급등세가 앞으로 매년 심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기후 위기가 하루아침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됐다는 판단에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이상기후가 일상이 됐다”라고도 말했다.

이상기후로 인한 농산물 가격 상승, 고물가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 BBC 시사 프로그램 ‘뉴스 나이트’는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고물가 기획에서 기후(climate)와 고물가(inflation)의 합성어인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이라는 신조어를 소개했다.

해외 선진국들은 기후플레이션 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탄소 배출 저감책은 물론 기후 위기의 핵심을 식량 위기로 보고 저항성 강한 품종 개발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기후변화 및 식량 부족 대응을 명분으로 이른바 ‘유전자교정 작물’ 규제 완화도 추진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수급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향후 폭염 등 기상악화에 대응해 수급 동향을 매일 점검하고 비축·계약재배, 수입 조치 등을 통해 공급을 확대한다는 계획만을 세웠다. 그러면서 유통업계를 향해 ‘가격 인상 자제’ 요구하고 나섰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기온이 조금 더 오르는 수준이 아니다. 밥상 물가를 위협하는 것을 넘어 식량난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 단순히 수급 계획을 세우고 마트에 농산물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것으로 넘어설 수 없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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