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잼쪽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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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11일 밤 K팝 스타들의 공연을 두 손 들어 즐기는 '잼쪽이들' 표정을 보고 나서야 모두가 겨우 시름을 놓았다.
'금쪽이'가 겪은 문제 원인을 따끔하게 짚어주는 어느 박사의 존재처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르마라도 타줄 이가 필요한 것만 같다.
일찍이 '네 탓 공방' 스타트를 끊은 정치권은 하루빨리 눈앞의 일들을 냉정히 마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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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우리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1박 2일 ‘뒤뜰 야영’ 미션이 떨어졌다. 부모님 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의 밤이라니. 한창 친구 좋을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내겐 그만한 축제도 없었던 기억이다. 비장하게 스카우트식 인사인 ‘삼지례’를 남기고 집을 나선 뒤, 학교 운동장으로 총총히 달려가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웠다. 서툴지만 저녁도 만들어 먹고 타오르는 캠프파이어 앞에서 괜한 눈물도 흘렸다.
우리 대원들에겐 평생 잊히지 않을 기억인데, 누군가에겐 그 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길 최근에서야 들었다. 부모든 아니든 ‘노심초사’의 시간이었단 거다. 열 살 안팎 ‘금쪽이’들이 수천 가구 단지의 복판 초등학교에서 복작대고 있으니 신경이 온통 쏠릴 수밖에. 어쩐지 운동장에서 바로 올려다 보였던 친구네 거실 불은 밤새 꺼지지 않았고, 불쑥 “벌레에 물리면 안 된다”며 모기향을 모아다 준 어르신도 있었다. 아침엔 학교 정문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어 아이들의 부스스한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서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열이틀간 세계스카우트 대원들을 지켜본 우리의 마음이 그랬다. 이역만리 새만금으로, 그것도 수만 명의 세계 청소년들이 날아왔다는데. 절절 끓는 날씨에 곰팡이 달걀을 받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고? 아이들 다리를 물어뜯는 화상벌레는 또 뭐고?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전북 주민들은 꽃게냉동고까지 동원해 물을 얼려 날랐다. 태풍으로 인한 철수 소식에 대학과 기업들은 공간을 짜내 묵을 곳을 내어줬다. K팝댄스, 태권도, 심지어 K과일 맛보기 체험까지, 동원될 수 있는 모든 ‘K-자원’들이 순식간에 준비됐다. 서울 어느 지역에선 학교 녹색어머니회에도 봉사 지원 요청이 전달됐다고 하니, 정말 온 국민이 대원들을 위해 뛰어든 거다. 오죽하면 이들을 ‘금쪽같은 잼버리’라고 불렀을까. 11일 밤 K팝 스타들의 공연을 두 손 들어 즐기는 ‘잼쪽이들’ 표정을 보고 나서야 모두가 겨우 시름을 놓았다.
한국을 떠나며 연신 “생큐 코리아”를 외친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얽혔다.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 사이로 못지않은 크기의 허탈감이 비집고 들어왔다. 6년의 시간, 1,17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 큰 행사를 두고 왜 이렇게까지 많은 이들이 노심초사해야 했을까. ‘금모으기 운동’의 추억을 끄집어 내보자는 누군가의 응원 아닌 응원이 마치 희롱처럼 들리는 지경이다.
게다가 대상만 수백 명에 이를 대대적인 감사를 두고 벌써부터 갈등의 연기가 피어오르니 기운이 쭉 빠진다. 정치 역학에 지역감정까지 뒤엉킨, 전에 없던 맛 좋은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양 달려드는 이들에게 문제를 그 자체로 들여다볼 최소한의 의지는 있는 걸까. ‘금쪽이’가 겪은 문제 원인을 따끔하게 짚어주는 어느 박사의 존재처럼,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가르마라도 타줄 이가 필요한 것만 같다.
‘국제적 망신’을 논하기 이전에, 줄줄이 답을 기다리고 있는 국민 머릿속 물음표들부터 차근히 풀어가야 한다. 일찍이 ‘네 탓 공방’ 스타트를 끊은 정치권은 하루빨리 눈앞의 일들을 냉정히 마주하기 바란다. 어느 정권의 잘못이냐가 아니라, 준비 과정, 대회 운영, 폐영까지 과정을 중심으로 따져나가는 게 먼저다. 예산 중 겨우 2억 원을 ‘폭염 대비 물품’ 사는 데 쓴 조직위원회, 이때다 싶어 수십 번의 해외 출장을 간 공무원들은 내막을 소상히 털어놔야 할 것이다. 관리∙감독에 철저히 실패한 여성가족부와 행정안전부는 말할 것도 없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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