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신문 1면에 실려도 괜찮을지 자문하라”
직원 스스로 윤리 의식 갖추게 CEO가 준법 문화 선도해야
“통상 CEO(최고경영자)는 심각한 문제가 터지기 전에 그 낌새를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순간에 바로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살로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말이죠.”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지난 2017년 버크셔 해서웨이 정기 주주총회에서 직원들의 금융 범죄를 막기 위한 CEO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면서 1991년 터진 미국 대형 증권사 ‘살로먼 브러더스(이하 살로먼)’의 국채 부정 입찰 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뉴욕 채권시장의 큰손이었던 살로먼은 고객 명의를 무더기로 도용해 입찰에 참여했고, 미 재무부가 발행한 국채를 싹쓸이한 혐의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였던 버핏이 9개월간 임시 회장을 맡아 파산 위기를 수습했다.
1991년 4월 살로먼의 존 굿프렌드 CEO 등 간부들은 폴 모저라는 직원이 재무부를 상대로 허위 매수 주문을 낸 사실을 회의에서 보고받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고 미적대다가 결국 재무부와 SEC(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모저는 한 달 뒤에도 또다시 허위 매수 주문을 냈다가 적발돼 징역형과 함께 11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CEO였던 굿프렌드는 벌금 10만달러와 함께 평생 증권사 회장이나 CEO직을 맡지 않겠다는 각서를 썼다.
버핏은 “그날 회의에 참석한 CEO는 이 사실을 뉴욕 연준에 보고하겠다고 했지만, 즉시 보고하지 않고 뒤로 미루었다”며 “경영진이 알면서도 상습 방화범의 범행을 막지 못했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됐다”고 했다.
살로먼 사건은 범죄를 저지른 행위자뿐 아니라 감독 책임이 있는 CEO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종을 금융 업계에 울렸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CEO가 범죄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증거가 없으면 당국이 처벌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에너지와 통신의 대형 업체였던 엔론과 월드콤이 대규모 회계 조작 사건으로 파산하자 미 의회는 2002년 경영진의 범죄 예방 책임을 명문화한 ‘사베인스-옥슬리법’을 통과시켰다. 회계 부정 같은 금융 범죄가 발생할 경우 CEO까지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이다. 다만 무조건 처벌하는 채찍이 아니라, 경영진이 임직원들의 위반 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고 이를 충실히 이행했을 경우 책임을 면해주는 당근도 함께 제시했다. CEO가 혹시 모를 불의의 금융 사고가 발생해도 처벌받지 않도록 평소 준법 감시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다. 이를 ‘최고경영진의 의지(Tone at the top)’라고 부른다. 법을 지키는 문화는 기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최고경영진부터 시작해 아래로 확산돼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직원들 범죄에 대해 CEO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이달 들어서만 500억원대 횡령(경남은행), 고객회사 정보를 이용한 불법 주식거래(국민은행), 고객 명의를 도용한 주식계좌 개설(대구은행) 등 은행원들의 비리가 잇따르자 당국은 CEO까지 책임을 물리는 관련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하나를 못 잡는다”는 속담처럼 제도적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상식과 양심에 비추어 그릇된 일은 하지 않는 윤리의식이 기업 내에 강력한 조직 문화로 뿌리내려야 한다. 버핏이 살로먼 회장 시절 미 하원의 청문회에서 한 발언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법을 지키겠다는 말보다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비판적인 기자가 이 일을 다음 날 지역 신문 1면에 보도해서 가족과 친구들이 봐도 괜찮은가’라고 자문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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