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간신열전] [197] 의(議)와 논(論)
우리는 흔히 “의논(議論)하다” “논의(論議)하다”는 말을 쓰지만 의(議)와 논(論)은 엄격히 다르다. 간단히 말하면 의(議)란 책임 있는 의견이고 논(論)이란 책임에서 벗어난 의견 개진이다. 그래서 의(議)란 책임 있는 조직원의 발언권으로 이어진다. 의원(議員)이 그렇다. 논(論)은 개인 의견보다도 륜(侖) 자가 포함되어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말의 조리가 중요하다. 언론사에 논객(論客)은 있어도 의객(議客)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조선 시대 육조에는 판서(判書), 참판(參判) 아래에 정3품 당상관 참의(參議)라는 관직이 있었다. 정3품 당상관이라야 비로소 당(堂)에 올라 국정에 관한 의견을 낼 수 있다. 참의(參議)라는 명칭 자체가 의견을 내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그 사안이나 인물에 대해 호오(好惡)를 말할 권한은 없다. 그것은 위에 있는 참판(參判)이 할 일이다. 판단하는 데 참여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판서(判書)는 말 그대로 판단을 내려 서명함으로써 총괄적 책임을 지게 된다.
지금처럼 장관(長官), 차관(次官), 차관보(次官補)라고 하면 1, 2, 2-1의 서열만 있을 뿐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다.
입법부나 행정부는 이처럼 의(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반면에 사법부로 넘어가면 재판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議)가 아니라 논(論)이다. 검사의 논고(論告), 변호사의 변론(辯論), 판사의 판결문(判決文)은 모두 논(論)이지 의(議)가 아니다. 참고로 학계도 마찬가지다. 논문(論文)이라 하지 의문(議文)이라 하지 않는다.
최근 한 판사가 정치인에게 내린 판결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을 공인이 아니라 한 것은 명백히 의(議)이지 논(論)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여러모로 봐도 이 판사는 논(論)보다 의(議)가 앞서는 사람이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이런 사람은 ‘판사’라는 논(論)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정파 쪽으로 가서 의견 내는 일이나 하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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