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혁의 극적인 순간] 잠시 같이 달리고 같이 걸었던, 소년 시절
나는 중학교를 이모네 집에서 다녔다. 이모네 집은 면에 있었고 학교는 읍에 있었다. 말이 읍이었지, 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숲과 언덕을 지나야만 나오는 학교였다. 새벽 첫 버스를 타고 30분 가까이 달려서 터미널에 내린 후, 30분을 넘게 걸어가야만 했다. 첫 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야 했다. 이렇게 3년을 다닐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머리를 굴렸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한 친구에게 부탁해서 매일 아침 터미널 앞에서 만났다. 내가 운전하는 조건으로 아침마다 자전거를 얻어 타고 다녔다. 친구를 뒤에 태우고 언덕을 오를 때마다 허벅지에 불이 나는 것 같았지만, 지각해서 오리걸음을 하는 데 비하면 천국이었다.
하지만 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아침에 무리해서 달리다가 흙탕물에 넘어지고 말았다. 친구는 내일부터 나를 태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다. 서러움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빗속을 터벅터벅 걸으며 자전거를 꼭 사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그때 학교로 배달 오는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매달 도시락비를 받았는데, 자전거 값을 모으려고 몇 달 동안 점심을 먹지 않았다.
2학기에 접어들 무렵, 드디어 자전거를 살 수 있었다. 매일매일이 천국이었다. 터미널 주변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아침이 되면 타고 학교에 갔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같은 자리에 묶어놓고 버스를 탔다. 그러나 역시 천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터미널에 와보니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다. 묶어둔 자물쇠 끈만 잘린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자전거를 훔쳐 간 범인을 반드시 잡겠다고 다짐했다.
수업이 끝난 저녁마다 읍내를 돌아다녔다. 일주일이 지날 무렵, 범인을 찾았다. 터미널에서 껌을 파시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손자로 보이는 애가 가끔 할머니를 도와 껌을 팔곤 했다. 나랑 또래처럼 보여서 몇 번 쳐다본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눈에 힘을 잔뜩 준 채 나를 바라보곤 했다. 자전거가 사라진 날 이후로 몇 번 눈이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눈길을 피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어느 날 아침, 학교를 가는 척하다가 그 애를 미행했다. 예감대로 그 애는 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자전거가 넘어지고, 그 애는 붙잡힌 채 애원했다. 자전거를 너무 타고 싶어서 그랬다고, 할머니한테만 말하지 말아 달라고. 그 애는 할머니랑 둘이 살고 있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싸늘한 표정으로 자전거를 챙겨 돌아가는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자전거가 없었던 시절이 떠올랐다. 한참 고민하다가 제안했다. 저녁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으니 타고 싶으면 그때 타라고. 그 대신 아침에는 꼭 다시 터미널에 가지고 오라고. 그날 이후 기묘한 공유가 시작되었다. 그 애는 내 자전거를 소중하게 다뤄주었다. 매일 아침 터미널에 오면, 자전거가 새것처럼 닦여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나도 가끔 저녁에 자전거를 묶어놓으며 학교에서 받은 우유를 바구니에 넣어놓곤 했다.
어느 토요일 낮, 수업을 일찍 마치고 터미널에 왔더니 그 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좋은 곳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를 뒤에 태우고 그 애는 쌩생 달렸다. 읍내를 벗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비포장길을 달렸다. 학교와 터미널만 오가던 자전거가, 낯선 길을 달리며 펼쳐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한참을 달리던 자전거가 멈춰 선 곳은 저수지였다. 자기만의 아지트라고 했다. 얼기설기 쳐놓은 낡은 텐트에는 그 애가 여기저기서 주워온 잡지와 만화책이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만화책을 보며 뒹굴거렸다. 아! 해가 지기 전에 떠나야 했는데. 노을이 지자마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무서운 형들에게 자전거를 뺏겼다. 우리 둘 다 엉엉 울면서 비포장길을 걸어갔다. 그 애가 울먹이며 말했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까지 같이 걸어가주겠다고.
그 애는 정말 약속을 지켰다. 친구와 30분을 걸어가며 떠는 수다는, 자전거와는 또 다른 행복이 있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애가 터미널에서 보이지 않았다. 껌을 파시는 할머니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 알게 되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 애는 보육원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그 애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어설프게 우리의 동행은 끝났다. 해가 바뀌고 2학년이 되었을 무렵, 학교로 걸어가는데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그 애가, 그때의 그 무서운 형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내 맞은편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우리 둘은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곧 고개를 돌렸다. 누가 먼저 돌렸는지, 나는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애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을, 나는 지금도 가끔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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