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글로벌 문화현장] 아바도가 키운 ‘관현악 프리미어 리그’… 베를린 필·뮌헨 필 등 줄섰다

루체른/김기철기자 2023. 8.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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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 페스티벌 가보니…
12일 루체른 페스티벌 둘째 날 공연에서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파보 예르비 지휘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9번을 협연했다. 피레스는 앙코르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탄생 90주년을 맞은 아바도에게 바친다"고 말했다. Peter Fischli / Lucerne Festival
12일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협연한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연주 후 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인사하고 있다. Peter Fischli / Lucerne Festival

12일 저녁 스위스 호반도시 루체른의 KKL홀. 연주 후 커튼콜에 불려나온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마이크를 잡았다. 여든을 목전에 둔 피레스로선 이례적인 장면이라 모두들 주목했다.

“모차르트 한 악장을 더 연주할 텐데요.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은 아바도에게 바칩니다.” ‘아바도’란 이름을 꺼내는 순간, 피레스의 얼굴이 숙연해졌다. 2003년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는 루체른 페스티벌을 최고의 여름 클래식 축제로 만든 뒤 2014년 타계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에 주제 음악처럼 쓰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이 흘러나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곡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청중들은 이 페스티벌에 마지막 힘을 쏟은 아바도의 부재(不在)에 가슴 아렸을 것이다. 루체른 페스티벌 이틀째인 이날은 파보 예르비 지휘로 피레스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을 연주했고, 브람스 교향곡 4번으로 마무리했다. ‘건축계 노벨상’으로 알려진 프리츠커상 수상자 장 누벨이 설계한 KKL홀 천장의 푸른 조명이 밤하늘을 비추는 별처럼 빛났다. 아바도의 영혼이 함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장 누벨이 설계한 KKL홀. 루체른 호숫가에 들어선 KKL홀은 단순하고 세련된 외관은 물론 음향이 뛰어난 콘서트홀로 이름났다./김기철 기자

11일 개막 공연도 2007년 아바도가 지휘했던 말러 교향곡 3번이었다. 갑작스러운 수술로 입원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를 대신해 역시 파보 예르비가 지휘대에 섰다. 유럽 명문악단 악장, 수석들이 수두룩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화려한 금관으로 시작부터 압도했다. 사랑의 힘을 찬미하는 23분짜리 마지막 아다지오 악장이 끝나자 아바도가 이끈 예전 콘서트의 ‘침묵의 시간’을 떠올렸다. 객석에서 이른 박수로 침묵을 깨뜨릴까 미묘한 긴장이 흘렀는데, 오케스트라 단원이 퉁 하고 현(絃) 소리를 내는 바람에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든 것은 2003년.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실내악단을 만든 일종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에서 물러난 이듬해였다. 아바도가 만든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를 주축 삼아 특급 연주자들이 앞다퉈 모였다. 솔리스트로 이름난 클라리넷 주자 자비네 마이어, 베를린 필 스타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와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정상급 4중주단인 하겐 콰르텟, 알반베르크 콰르텟이 이름을 올렸다.

Priska Ketterer/LUCERNE FESTIVAL 지난 11일 열린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 공연. 파보 예르비 지휘로 말러 교향곡 3번을 공연한 뒤 청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2007년 아바도가 연주했던 프로그램이다.

◇'관현악의 프리미어 리그’

매년 여름 루체른 KKL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체른 페스티벌은 아바도 지휘하에 유럽의 정상급 여름 클래식 축제로 도약했다. 올해에만 베를린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뮌헨 필, 보스턴 심포니, 오슬로 필하모닉 같은 정상급 교향악단이 찾아오고, 마르타 아르헤리치, 안드라스 시프, 아네조피 무터, 다닐 트리포노프, 위자왕 같은 스타들이 연주한다. 96세의 거장 헤르베르트 블롬스테트를 비롯, 키릴 페트렌코, 크리스티안 틸레만, 안드리스 넬손스, 켄트 나가노, 블라디미르 유롭스키, 클라우스 메켈레 같은 지휘자들은 물론 수잔나 멜키,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 같은 여성 지휘자들도 볼 수있다. 관현악, 실내악을 중심으로 한 기악 분야의 ‘프리미어 리그’로 손꼽히는 이유다. 덕분에 한국 음악 팬들도 개막 공연부터 눈에 띌 만큼 이름난 축제가 됐다.

지난 11일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 공연을 KKL홀 야외 광장에서 지켜보는 시민들. 말러교향곡 3번을 연주한 이 개막 공연은 실시간으로 야외에 중계됐다. Peter Fischli / Lucerne Festival
지난 11일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공연을 KKL홀 야외 광장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관객들. Peter Fischli / Lucerne Festival

◇페스티벌의 꽃, KKL홀

루체른 페스티벌의 경쟁력은 1998년 개관한 KKL홀에 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외관도 아름답지만, 흰색으로 마감된 콘서트홀 내부는 뛰어난 음향으로 소문났다. 바흐부터 브루크너, 말러 같은 대편성 교향곡까지 매끄럽게 소화하는 음향 시설은 음악 팬들의 찬사를 받는다. 공연장 위치도 최고다. 유럽 전역에서 오는 기차가 닿는 루체른 중앙역사엔 ‘KKL홀 200’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루체른 호수 주변 마을을 잇는 여객선과 유람선이 오가는 부두가 공연장 앞에 있다. 루체른의 관광 상징인 카펠교에서도 걸어서 10분 거리다.

◇바그너,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의 흔적

루체른 페스티벌은 1938년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전쟁을 피해 망명한 음악가들을 모아 바그너 옛집에서 오케스트라 콘서트를 시작하면서 유명해졌다. 1866년부터 6년간 이곳에 살면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와 ‘니벨룽의 반지’를 작곡한 바그너와 라흐마니노프, 호로비츠가 살던 집은 루체른의 문화적 색채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바그너 옛집을 개조한 박물관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라흐마니노프와 호로비츠가 살던 루체른 호숫가 빌라 세나르(SENAR)도 작년 지방 정부가 사들여 올 4월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루체른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키우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올해 루체른 페스티벌은 9월 1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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