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성난 사람들’ 이성진… “한국계 정체성 드러내자 오히려 인기”

남정미 기자 2023. 8.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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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경험 바탕 작품으로… 감독·작가 등 에미상 13개 후보에
이성진은 “‘성난 사람들’은 내 ‘로드 레이지(난폭 운전)’ 경험에서 시작됐다”며 “친구인 스티븐 연에게 전화해 줄거리를 네 문장 말했더니 단박에 출연하겠다고 하더라”고 했다./한국콘텐츠진흥원

올해 에미상 11부문 13개 후보에 오른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엔 이성진이란 이름이 세 번 나온다. 감독, 작가, 제작총괄. 이때 나오는 이름은 ‘성진 리’도, 그의 애칭인 ‘소니 리’도 아니다. 그저 ‘이성진(LEE SUNG JIN)’이다.

지난 16일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국제방송영상마켓(BCWW) 특별 세션 연사로 초청된 한국계 미국인 작가 겸 감독 이성진(42)은 “학창 시절 미국에서 출석을 부를 때면 늘 창피했다”고 말했다. BCWW는 K-콘텐츠와 관련된 국내 제작사, 플랫폼과 해외 바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로, 올해는 2000년 첫 개최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인 19국 278개사(온·오프라인)가 참가했다.

미국에선 친구들은 물론이고, 선생님도 이성진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9개월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초등학교 3~5학년을 보낸 뒤, 다시 미국으로 갔다. 사람들 앞에서 한국 이름으로 불리는 게 싫었던 그는, 숙제를 제출할 때 ‘소니’란 영어 이름을 써서 냈다. 이후 소니는 그의 별칭이자 영어 이름이 됐다. 그러나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에 상륙하면서 그는 결심한다. “미국인이 봉준호 감독 이름을 말할 때 실수하지 않는다. 정확히 발음하려고 무지 노력한다.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면 미국인이 내 한국 이름을 듣고 더는 웃지 않을 것이다.”

2023년 그는 이 약속을 지켰다. 지난 4월 ‘성난 사람들’ 공개 후 ‘이성진’이란 이름은 이제 대부분 정확하게 발음된다.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영세 수리업자(스티븐 연)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앨리 웡) 사이에 난폭 운전이 벌어지면서 촉발되는 이야기. 넷플릭스 글로벌 주간 시청 시간 3위에 올랐고, ‘근래 들어 가장 활기차고 놀랍고 통찰력 있는 작품(뉴욕타임스)’ 등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관심을 모두 사로잡았다. 이성진은 이 작품으로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감독·작가상 후보에, 주연 배우 스티븐 연과 앨리 웡은 각각 남우·여우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제75회 에미상 11개 부문 13개 후보에 오른 '성난사람들'은 마트 주차장에서 운전 시비가 붙은 대니(오른쪽)와 에이미가 서로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복수전을 끝없이 펼치는 이야기다. /넷플릭스

미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이성진은 “이 전공으론 결국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2003년 졸업 후 뉴욕으로 간 그는 2008년 미국 월트 디즈니 계열 케이블 채널인 FXX의 드라마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에 각본가로 참여하기까지, 각종 아르바이트와 대본 습작을 병행했다. 그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작가로 일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첫째는 운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정말 글을 잘 써야 한다”고 했다. “운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잘 쓰는 건 노력해볼 수 있다. 글만 연구하고 또 연구하고, 쓰고 또 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운도 따라오더라.”

“처음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만, 지금은 ‘굳이 미국인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내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쓰니 모두가 함께 즐기더라.”

‘포기하고 싶은 때는 없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울림이 있었다. “우리는 ‘친구랑 노는 걸 왜 포기안했냐’고 묻지 않는다. 내겐 글쓰기가 그렇다. 언제나 글쓰기가 좋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게 더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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