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잦아드는 건국절 시비

강필희 기자 2023. 8.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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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과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진 1948년 중 진짜 건국은 언제인가를 두고 한때 우리 사회가 시끄러웠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광복절 축사 때 '건국 50년'을 말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가리켜 "이 나라를 건설했다"고 언급할 때까지는 진보조차 문제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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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과 남한 단독정부가 세워진 1948년 중 진짜 건국은 언제인가를 두고 한때 우리 사회가 시끄러웠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광복절 축사 때 ‘건국 50년’을 말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을 가리켜 “이 나라를 건설했다”고 언급할 때까지는 진보조차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다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1948년을 건국 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적극 호응하자 좌우 다툼이 본격 점화됐다. 하지만 ‘1919년’을 주장하는 진보 진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1948년 건국론’엔 입을 다문다. 보수는 보수대로 제헌헌법이 1919년을 대한민국 건립년도로 삼았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이를 재확인했다는 사실 때문에 ‘1948년론’의 토대를 상실했다.


올해 제78주년 광복절을 맞아 다시 한번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는가 했으나 의외로 조용히 넘어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축사에서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규정했다. 독립운동 전체가 건국의 과정이라며 논쟁을 우회한 것이다. 대신 이종찬 광복회장은 앞선 연설에서 “고종 승하로 왕정이 민주공화정으로 바뀌었고 군주가 독점하던 주권이 국민에게 넘어갔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없었지만 나라는 있었다“며 ‘1948년 건국론’을 직격했다. 광복회장이 국가 원년을 1919년으로 다시 한번 못 박고, 대통령은 이를 인정하는 역할 분담이 자연스레 이뤄진 셈이다. 이 회장은 6형제가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한 우당 이회영의 손자로 역사적 부채감이나 콤플렉스가 없다. 그런 그를 윤 대통령은 친구 부친이자 인생 멘토로 모시기에 이런 장면이 가능했다.

세계 각국이 건국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시작일, 미국은 1776년 독립 선언일, 호주는 1788년 대륙 발견일을 기념한다. 중국은 공화국과 헌법 선포일을 중요시한다. 일본은 기원전 660년 2월 11일이 건국 기념일이다. 국가의 구성요소로 영토 국민 주권을 엄밀히 따지는 건 국제법과 학문의 영역일 뿐이다. 우리 민족이 대한민국의 시작과 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겠다는 의지와 다툴 일이 아니다.

‘우리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우리는 이름을 남기지 않는다/동지들 눈 속에 남는다…’. 이번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이종찬 회장의 목청에 실려 시 한편이 울려 퍼졌다. 일제 밀정에 암살당한 우당의 절명시 ‘가난한 유서’이다. 건국절 시비를 하찮게 만드는 선열들의 고결함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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