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17석의 의미

하송이 기자 2023. 8. 17.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1년 반쯤 남긴 시점이 되면 다음 선거에 적용할 지역구 조정이 시작된다. 4년 사이 인구 변동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지역구는 인구가 늘어난 곳은 쪼개고, 줄어든 곳은 합치는 것이 원칙이다. 비례대표를 어떤 방식으로 뽑을 지도 정한다.

공직선거법 대로 하자면 국회는 선거일로부터 1년 전 지역구를 확정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법대로 된 적은 없다. 어떻게 선을 긋느냐, 비례대표 배분 기준을 무엇으로 하느냐에 따라 선거 유불리가 크게 달라지니 여야 할 것 없이 끝까지 자신들이 유리한 방식을 고수한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올해도 상황은 똑같다. 내년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선거구 획정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300석인 현재 의석수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비례대표와 지역구 의석수 비율은 그대로 둘 것인지, 지역구 조정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정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텐데 뭔가가 결정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부산만 놓고 보자. 부산은 지난 4년간 전체 인구가 내리막길이었다. 2019년 340만 명 대였던 인구는 올해 330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인천이나 경기 등지에선 같은 기간 인구가 크게 늘었다. 전체 의석수가 갑자기 증가할 가능성은 낮으니 결국 지역끼리 파이를 쪼개야 할 판인데, 인구가 감소한 부산은 불리할 대로 불리한 처지다. 지난 2월 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내놓은 지역구 조정안을 보면 부산에서 기준 인구가 미달한 지역구가 3곳, 초과한 곳이 2곳이다.

인구가 줄고 지역구 유지를 위한 인구 하한 기준이 무너진 곳도 3 곳이나 되니 부산 정치권에서는 현재 18석에서 1석이 빠지는 ‘17석 불가피론’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인구가 줄어든 곳은 합치는 반면 늘어난 곳은 못 쪼개면 ‘-1’이 된다는 논리다. 18석 중 겨우 1석 줄어드는 게 뭔 대수인가 싶겠지만 문제는 의석수 감소는 단순히 숫자가 작아진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수는 곧 지역의 목소리 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이전 논의 과정을 보자.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이 산업은행 본점을 서울로 못박은 한국산업은행법의 개정을 추진하자 산업은행 본사를 지역구에 둔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은 사사건건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민주당 전북 의원들은 한발 더 나아가 한국투자공사를 전북으로 이전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맞불을 놨다. 공공기관 지역이전 논란에 불이 붙자 정치권에서는 한국은행 본사의 강원 이전 주장도 튀어나왔다.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엇갈릴 때 정치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가덕신공항과 TK(대구 경북)신공항을 두고 PK(부산 울산 경남)와 TK 정치권이 맞붙은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이러니 1석이 아쉬울 수 밖에.

부산 국회의원에게 내년 총선에서 부산 의석수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물으면 일부는 “18석 지켜야지요” 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떻게요?”고 물으면 “잘 해봐야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선문답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일부는 “17석 될 것 같다”며 이미 포기한 눈치다. 그래서 여야가 머리 맞대고 대책회의라도 해봤느냐 물으면 다들 고개를 젓는다.

조바심에 한마디 보태자면 부산이 18석 사수를 위해 당장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은 지역 균형 발전일테다. 가뜩이나 블랙홀처럼 수도권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마당에 국회 의석까지 수도권에 편중되면 지역의 목소리는 묻혀버릴게 뻔하다. 수도권 쏠림이 극심한 우리나라에서 인구만 놓고 기계적으로 지역구를 조정해선 안되는 이유다. 부산과 의석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은 인천도 결국 수도권 아닌가.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바꿔 지역 목소리를 대변하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듯하다. 인구가 감소한 지역의 사정은 매한가지일테니 손잡는 방법도 있겠다.


내년 총선까지 8개월. 선거제 개편을 앞두고 부산 의원 18명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들이 어떤 논리와 명분을 꺼내들지 궁금하다.

하송이 정치부 차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