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94]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로 시작하는 ‘귀국선’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이나 징병 등으로 타국으로 끌려갔거나 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을 떠났다가 광복을 맞아 귀국하는 동포들의 환희와 기대감을 표현한 노래다.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웃어라 파도야 춤춰라”에서 보듯이, 오매불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는 이들의 감격과 흥분이 노랫말에서 물씬 풍겨 나온다.
손로원이 작사하고 이재호가 작곡한 ‘귀국선’의 유성기 음반(SP)은 현재까지 세 종류가 확인된다. 모두 이병주가 1947년에 대구에 설립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발매하였는데, 이병주의 후대 증언에 따르면 세 종류나 나오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처음에 이인권의 목소리로 녹음했으나 기술이 부족해서 원판 제작에 실패하였다. 당시의 통신수단으로는 이인권에게 즉시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부득이하게 오리엔트레코드사의 신인 가수 신세영이 다시 노래를 녹음했다. 하지만 음반 발매 이전부터 이인권이 무대에서 부르기도 했거니와 그의 노래로 홍보까지 했던지라 1949년 7월에 발매된 ‘귀국선’의 첫 음반에는 가수 이름을 명시할 수 없었다. 그것이 꺼림직했던지 1949년 9월에 이인권의 목소리로 녹음한 두 번째 유성기 음반이 발매되었다. 이후 1952년에 이인권의 목소리로 재차 녹음한 ‘귀국선’의 세 번째 음반도 발매되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 이 음반 수록곡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주도했던 우리나라의 음반 산업은 광복을 맞이하여 원점으로 돌아갔으나, 음반 제작을 향한 우리의 열망만큼은 대단했다. 녹음실이라고 할 수도 없는 공간에서 군용 담요로 창문을 가리고 열악한 녹음 설비에 의존하여 인적이 드문 새벽 시간에 겨우 녹음했다는 이병주의 증언은 눈물겹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세상 빛을 본 ‘귀국선’은 매년 광복절이면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노래가 되었다.
‘귀국선’은 고국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담은 노래지만 광복 이후에도 끝내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이 있다. 바로 ‘우키시마마루(浮島丸)’라는 귀국선 1호다. 일본에서 강제로 노역하던 우리 동포들은 1945년 8월 22일에 부산으로 향하는 ‘우키시마마루호’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출항 이틀 후에 돌연 방향을 바꿔 일본의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던 배가 폭발음과 함께 침몰하였다. 배에 타고 있던 수천 동포가 수장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8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안도와 희망의 귀국길이 어느 순간 공포와 죽음으로 바뀌었으니 참혹하다. 돌아오지 못한 귀국선의 한은 언제나 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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