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묘 찾아낸 日 학자의 자료 2만점, 한국에 기증
윤동주 시인을 비롯해 한국 문학 연구에 평생을 바친 고(故)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1933~2023) 와세다대 명예교수의 자택에 있는 자료 2만여 점이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된다. 국립한국문학관은 16일 “이번 기증 자료는 오무라 마스오 선생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거의 모든 자료로, 해외 연구자가 국립한국문학관에 처음으로 기증한 사례”라고 밝혔다.
지난 1월 별세한 오무라 교수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윤동주 연구가로 꼽힌다. 1985년 중국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룽징에 방치돼 있던 윤동주 시인의 묘지를 처음으로 발견했고, 1986년 유족을 찾아가 윤동주의 육필 원고를 확인한 일화도 유명하다. 윤동주 연구에 있어 기초 자료로 꼽히는 ‘윤동주 자필시고집’(1999)을 비롯해, 윤동주 관련 논문과 책을 10편 넘게 발표했다. 그는 생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인 학자로서 나는 한국 사람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완할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일본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연구하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윤동주의 묘지를 발견했을 때, 한국 문학계로부터 ‘하필 일본인이 묘를 발견했다’는 식의 불만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기증은 ‘사후 한국에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이뤄졌다. 지난 7월 유족의 기증 허락을 받기 위해 고인의 일본 자택에 다녀온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은 “집의 방 대부분이 책으로 가득 차 있어, 두 내외는 거실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잤다. 평생을 연구에 몰두한 학자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고인의 아내가 문 관장에게 “(자료를) 가져가세요. 나도 다리 좀 펴고 잡시다”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고인의 사후 와세다대를 비롯한 일본 학계에서 자료를 기증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으나, 결국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자료가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한국문학관에 기증될 자료 2만여 점에는 한국 문학이 걸어온 길을 다채롭게 해 줄 자료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김달수·이회성을 비롯한 재일조선인 작가의 자료, 재일조선인들이 만든 신문과 잡지 등이 대표적 희귀 자료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일본에서 발간된 한국문학과 한국 관련 자료, 김시종·임종국·김학철을 비롯한 한국 문인들과 고인이 주고받은 서간도 다수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고, 중국 등 해외에서 수집한 한국 문학 자료를 바탕으로 한 고인의 연구 노트도 포함돼 있다. 이 자료들은 고인의 자택 서고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연내 아카이빙을 거친 다음, 국내로 이관될 예정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은 기증 자료와 관련된 학술 대회, 현판 제작 등을 통해 기증의 뜻을 알리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문정희 국립한국문학관장은 “마스오 교수 내외가 이 자료들을 위해 평생을 검소하게 지내온 걸로 알고 있다. 그 자료를 어떤 대가도 없이 기증하신 뜻을 무겁게 새기겠다”며 “북한, 중국을 비롯해 한국 문학의 손이 뻗치지 않았던 페이지가 채워져, 한국 문학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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