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의 늪에 빠진 중국… 베이징서 “아파트 환불하라” 천막 농성
15일 오후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비구이위안(碧桂園)의 베이징 퉁저우구(區) 아파트 건설 현장.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개발 업체인 비구이위안이 2021년부터 짓고 있는 이 아파트 입구 앞에 대형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천막엔 붉은 글자로 ‘비구이위안 수(受)분양자 권익 보호[維權]’라고 쓰여 있다. 전국 각지에서 비구이위안 아파트를 분양받은 이들이 환불을 요구하려고 마련한 농성장이다. 천막 옆에 주차된 중형 차량 전면 유리에 꽂힌 표시판에는 농성이 지속된 기간인 ‘95일’이 적혀 있다.
천막 농성에 참여한 의사 출신 장모(64)씨는 “모두 40~50명이 대여섯 명씩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킨다”면서 “비구이위안이 돈도 못 갚을 처지란 사실이 알려지자 이곳을 찾는 동지가 늘었다”고 했다. 그는 평생 모은 노후 자금 300만위안(약 5억5000만원)으로 지난해 비구이위안 아파트 두 채를 샀다. 하지만 비구이위안 파산 위기설이 돌면서 입주하기도 전에 가격이 반 토막 났다. 천막을 지키던 40대 여성은 “베이징대에 다니는 자녀의 뒷바라지를 위해서라도 아파트 환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난 13일에는 비구이위안의 쓰촨성 사무실에 수분양자 100여 명이 몰려와 항의했다. 올해 5월 입주 예정이었던 이들은 아파트 공사가 중단된 상황에 이달 초 디폴트 소식까지 들리자 행동에 나선 것이다.
16일 시행 1년을 맞은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잇단 대중(對中) 규제 영향으로 중국 경제의 수출·생산 등이 연쇄 타격을 받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침체라는 내수 위기까지 발생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 부동산 시장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던 비구이위안이 휘청대자 공포는 빠르게 확산 중이다. 비구이위안은 16일 상하이 증시 공시에서 “현재 회사채 상환에 불확실성이 크다”고 밝혔다. 부동산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대출이 많은 산업의 특성상 금융 등으로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도 크다.
1998년 정부에 의한 ‘주택 분배’ 시대가 종식된 이후 부동산은 중국 가계가 재산을 증식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버금가는 장기 침체의 뇌관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2008년 글로벌 경제를 강타해 세계 경제를 초토화한 미국발(發) 금융 위기도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기폭제가 됐다. 16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주요 70개 도시의 7월 신규 주택 가격 지수는 지난해보다 0.23% 내려갔다. 전월에 이어 두 달 연속 하락이다. 조사 대상 도시 중 70%(49개)의 주택 가격이 전월보다 떨어졌다.
비구이위안은 2017~2022년 중국 매출 1위를 기록한 회사다. 올해도 매출(1~5월 1399억 위안) 기준 5위, 판매 면적(1738만㎡) 기준 1위다. 전국적으로 공사 중단 문제가 심각했지만 비구이위안만큼은 지난 한 해 주택 70만채를 정상적으로 공급하며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서민들에겐 저소득 도시에 저비용으로 집을 지어 저가로 파는 ‘3저(低) 전략’으로 중국에서 특히 친숙한 업체다.
이런 비구이위안은 지난 6일 만기가 돌아온 10억달러(약 1조3400억원) 규모 채권 2종에 대한 이자(2250만달러)를 지급하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빠졌다. 이어 상반기 손실 규모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가 나왔다. 15일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비구이위안이 다음 달이 만기일인 또 다른 채권의 상환 시점을 3년 연장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비구이위안 위기는 부동산 시장 전반에 이어 금융권과 지방정부로 퍼지는 중이다. 위안양·완다·룽후 등 다른 부동산 업체들도 디폴트 위기에 놓였거나 자금난을 겪는다는 소문이 퍼지며 부동산 시장에 ‘도미노 디폴트’ 우려가 커졌다. 아울러 중국의 대형 부동산 신탁사인 중룽국제신탁이 만기를 맞은 상품 상환을 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14일 나오면서 금융 위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신탁은 민간 기업이 여유 자금을 맡기는 곳이라 문제가 생겨 돈을 뺄 수 없게 되면 파장이 크다. 지방정부의 재정 악화도 예상된다. 중국 지방정부는 부동산 업체에 토지 사용권을 판매해 대부분의 재정을 충당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극단적 정책들을 민간 기업인 비구이위안이 더는 버텨내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는 얘기다. 중국의 부동산 시장 침체는 2021년 당국이 부동산 업체를 겨냥해 강력한 대출 옥죄기 같은 규제를 연이어 도입하고 투기 억제 정책을 펴면서 시작됐다. 이후 강도 높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작년 말까지 유지하면서 중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됐다. 중국 금융권 관계자는 “비구이위안이 ‘회사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고 시인한 것은 정부에 구조 요청을 한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부동산 업체 살리기에 중국 정부가 쉽게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만 경제학자 황스팅(黃世廳)은 “중국 당국이 규모가 너무 큰 부동산 부실에 뛰어들지도 방관하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중국 금융권에서는 비구이위안의 ‘오마분시(五馬分尸)’ 예상이 나온다. 중국의 주요 국유 부동산 업체들이 비구이위안을 사들여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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