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 최전선 폴란드, 최대 규모 열병식… 한국 첨단무기 전시장 됐다
15일 오후 2시(현지 시각)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 시내의 한 거리. 낮 기온이 34도까지 오르는 무더위였지만, 거리 양쪽으로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하얀색과 빨간색이 위아래로 배치된 폴란드 국기가 곳곳에서 나부끼는 가운데, 국기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강한 하양·빨강(strong white-red)’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폴란드 국군의 날(8월 15일) 행사를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이다. 1920년 러시아 볼셰비키 군 침공에 맞서 싸워 승리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다. 바릴리코프시키(42)씨는 “바르샤바에서 100㎞쯤 떨어진 집에서 새벽에 가족들을 데리고 차를 몰고 왔다”며 “하양과 빨강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고, 보려고 왔다. 직접 와보니 안심이 된다”고 했다.
코로나로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열린 올해 국군의 날 행사는 사상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행사 하이라이트인 열병식에는 한국에서 들여온 K2 블랙팬서 전차, K9 자주포 등이 등장했고, FA-50 전투 훈련기, F-16 다목적 전투기, 무인 항공기 등 주로 서방권 지원을 받은 항공기 92대가 바르샤바 상공을 날았다. 현지 매체 디펜스24는 “옛 소련 장비가 육지에 등장하지 않은 최초의 퍼레이드”라고 했다. 폴란드가 모처럼 대대적인 군사력 과시에 나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운이 동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벨라루스는 지난달 중순 러시아 민간 용병단 바그너그룹과 함께 폴란드 국경 인근에서 군사 훈련에 나섰고, 최근 훈련 규모를 크게 늘렸다.
오는 10월 총선을 앞둔 폴란드 집권당이 안보 위기를 부각시켜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잡으려고 한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정치적 입장을 떠나 지금이 군사력을 키워야 할 때라는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군복을 입고 열병식을 찾은 빅토르(58)씨는 “100년 전 역사가 재현되고 있다. 빨리 더 많은 무기를 수입해야 한다”고 했다. 전쟁을 피해 폴란드로 건너온 우크라이나 사람들도 동맹국의 군사 굴기(崛起)를 응원하고 있었다. 열병식이 끝난 후 거리를 청소하고 있던 아냐타샤(17)는 “폴란드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국인 폴란드와 러시아 맹방 벨라루스 등 동유럽 일대가 서방과 친러 동맹 간의 새로운 ‘열점(熱點·hot spot)’으로 부상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1년 6개월 넘게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양안(兩岸·중국 본토와 대만) 갈등이 고조된 대만해협에 이어,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이 맞서는 전장(戰場)이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서방 최대 군사 동맹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지난 4월 핀란드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맞이한 데 이어, 중국·러시아·북한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태평양 4국과도 결속을 강화하고 있다.
새로운 힘겨루기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는 곳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맞닿은 약 65㎞ 길이의 수바우키 회랑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벨라루스와 러시아 역외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연결하는 최단 육로다. 칼리닌그라드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기지가 있는 군사 요충지다. 러시아 주력 함대인 발트함대 본거지도 이곳이다. 나토 국가들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경우 러시아의 최우선 공격 대상으로 거론된다. 나토 동맹국 입장에서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다른 회원국을 잇는 유일한 육로다. 이곳을 사수하지 못하면 발트3국이 고립된다.
지난 13일 기자가 승용차를 타고 수바우키 회랑에서 폴란드 동부 국경을 따라 이동하는 동안 검문소 당국자들의 신원 확인이 거듭됐다. 접경 지역에 찾아왔다는 것만으로 확인 대상이 된다고 했다. 수시로 군용 트럭을 마주쳤다. 이튿날 벨라루스 국경에 있는 폴란드 동부 도시 비아워비에자의 국경 검문소 앞에 다다르자 ‘문이 닫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휴양림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던 이곳은 지난 1일 벨라루스 헬기 2대가 영공을 넘어 마을에서 비행한 영상이 공개되면서 관광객이 급감했다고 한다. 한 관광 가이드는 현지 매체에 “이렇게 며칠 연속으로 쉬는 건 이번 시즌이 처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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