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조직 내쫓자” 떨쳐 일어난 덴마크 주민들
히피들의 공동체로 유명한 덴마크의 한 마을이 마약 범죄 온상으로 변질되자, 주민들이 마약 범죄 척결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기존 사회질서를 거부하며 극단적 자유를 추구하던 히피들이 오히려 법과 질서를 요구할 정도로 유럽의 마약 문제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일(현지 시각) 수도 코펜하겐 내 히피 자치 구역인 크리스티아니아 주민들이 마약상 활동 무대가 된 중심가 푸셔 거리를 컨테이너와 콘크리트 벽으로 막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마약 조직들이 이 지역에 유입돼 마약 거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살인 등 각종 폭력 범죄가 끊이질 않자 도로를 점거하고 대마초 판매를 막은 것이다.
주민들은 “우리는 일을 하고 아이들의 점심 도시락을 싸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크리스티아니아를 갱단의 횡포와 범죄에서 자유롭게 만들고자 행동에 나섰다”고 했다. WSJ는 “최근 몇 년간 마약 조직은 북유럽의 대표 관광 명소이자 덴마크 관용의 상징을 손상시켰다”고 전했다.
코펜하겐 남동쪽에 있는 크리스티아니아는 면적이 서울 한강 밤섬보다 조금 큰 33만m²이고 주민은 85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1971년 군 기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자 기존 사회 관습을 부정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히피주의에 심취한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공동체를 형성했다.
당초 덴마크 당국은 이들의 거주를 불허했지만, 끈질기게 투쟁해 1989년 자치권을 얻었다. 이로 인해 덴마크에서 불법인 기호용 대마초 거래가 이곳에서는 합법화됐다. 히피들의 해방구로 알려지면서 크리스티아니아는 매년 약 50만명이 방문하는 코펜하겐 대표 관광지가 됐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외부 마약 조직이 크리스티아니아의 대마초 판매망을 장악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마약 거래량이 폭증해 매년 150만달러(약 20억원) 상당 대마초가 크리스티아니아로 들어온다. 덴마크에서 사고팔리는 대마초의 3분의 2가 이곳으로 반입되는 것이다. 대마초 거래와 연관된 살인과 폭력 등 범죄도 증가했다.
2016년 8월 경찰관 2명과 민간인 1명이 마약범에게 살해된 뒤 대마초 노상 판매가 금지됐지만, 강력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덴마크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대마초 관련 체포자는 마을 전체 주민 숫자를 웃도는 875명에 달했다. 가디언은 “경찰은 체포된 이 대다수가 사회적 약자나 소외 계층이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범죄가 늘면서 공동체 질서도 무너지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자동차·총기·성분 강한 마약 반입 및 절도 등을 금지하는 자치법규를 만들어 수십 년간 준수해오고 있는데, 더 강력한 마약과 무기를 소지한 범죄 조직원들에게 무력화되고 있다. 주민 에머릭 바르부르크는 “그들(갱단)은 크리스티아니아의 도덕률을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치안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지난 6월 크리스티아니아 주민들은 코펜하겐 시 당국과 법무부, 경찰과 푸셔 거리를 폐쇄하는 내용의 합의를 했다. 소피 헤스토르프 안데르센 코펜하겐 시장은 “폭력과 범죄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도 없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티아니아 주민들은 해당 거리를 극장과 거리 예술이 활성화된 문화 지역으로 탈바꿈하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까지도 마약상들이 장악한 실정이라고 WSJ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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