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진의 의료와 사회] '건강'과 '복지' 통합 미래형 법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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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방문한 외래 환자가 있다.
태어나면서 뇌 손상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을 살고 있는 환자다.
30여 년 동안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은퇴한 남편이 버는 돈도 장애인 아들을 돌보는 데 계속 들어간다고 했다.
건강보험 지출은 2012년 38조8000억원에서 2022년 85조1000억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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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 입장서 지원 창의적 방안 마련을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지난달 방문한 외래 환자가 있다. 태어나면서 뇌 손상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을 살고 있는 환자다. 바퀴 달린 이동형 침대에 흡인기를 달고 어머니와 함께 왔다. 어머니는 집에서 아들을 돌보는데 흡인튜브를 구매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장애인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어려워 도움받을 수 있을까 해서 왔다고 했다. 30여 년 동안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은퇴한 남편이 버는 돈도 장애인 아들을 돌보는 데 계속 들어간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경제 순위가 10위권 국가이고 사회보장을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2023년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큰 현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건강보험 지출은 2012년 38조8000억원에서 2022년 85조1000억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집에서 돌보는 장애인의 흡인튜브가 급여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잘 이해되지 않는다.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도 마찬가지다. 2007년 제도가 시작된 지 15년이 지났음에도 정작 중증장애인을 지원하겠다던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다. 건강보험과 장애인복지는 그 제도 변화의 수혜자가 많은 방향으로 확대됐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그 혜택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단 제도 변화 시기에 수혜자가 생기고 나면 정치인도 언론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시간도 없이 중증장애인을 집에서 돌봐야 하는 부모와 가족들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집에서 사용하는 흡인튜브가 급여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흡인’이라는 의료행위는 의료인만 해야 하는데, 집에서 보호자나 장애인활동보조사가 하는 의료행위에 딸린 치료 재료를 급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면허제도가 자식을 돌보는 어머니의 행위마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보호자들에게 집에서 발생하는 의료 사고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서약을 받고 그 보호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제공한 뒤 급여하면 될 일이다. 이런 방법을 몰라서 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건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소수’의 중증장애인 문제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을 만큼 여유가 없다는 편이 옳다.
어머니는 왜 장애인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웠을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받는 돈은 차이가 거의 없는데 일은 너무 힘드니까요. 1시간에 2000원(2023년에 3000원이 됐다) 더 받는 것보다 편하게 일하는 걸 선택하는 거죠.” 그렇다. 장애인활동지원사 인건비 시급(단가에서 25% 운영비를 제외한 금액, 2023년 1만1678원)에 중증에 대한 가산급여(3000원)가 있는데 이 규모가 시장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2023년에 1000원이 인상됐으니 어머니가 작년보다 올해 얼마나 더 쉽게 장애인활동보조사를 구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우리나라의 법 제도와 행정 관점에서 보면 흡인튜브 급여는 건강보험 정책이고, 장애인활동지원사 제도는 장애인복지 정책이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을 집에서 돌봐야 하는 가족이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동시간에 발생하는 일상이다. 그들에게 보건과 복지는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질병 없이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인 ‘건강’이나 ‘행복한 인간의 삶’인 ‘복지’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법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행정의 칸막이를 허물 수 있다.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보건’과 ‘복지’라는 근대적 프레임은 수명을 다했다. ‘건강’과 ‘복지’를 당사자 입장에서 제공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국식 건강복지 법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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