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통령부터 달라지겠다” 한마디가 그리 어려운가

김순덕 대기자 2023. 8. 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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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혼자 숨 가쁘게 뛰는 사이
공직사회는 무능·무책임할 자유 만끽
‘일 잘하는 정부’ 내걸고 잼버리로 망신살
인사 편중부터 고쳐 공공개혁 시작하라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한미일 3국 정상이 만나 정상회의를 진행하는 모습. 히로시마=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떠난 사이, 국내는 ‘옷로비 사건’으로 들끓고 있었다. 김대중(DJ) 대통령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나라의 위상을 높여보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도 정상외교는 신문 한쪽 구석에’ 실렸고(김대중 자서전), 기자들 관심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 성과 아닌 장관 문책에 쏠렸기 때문이다.

“마녀사냥식으로 처리하면 후환을 남길 것”이라고 답한 DJ의 독선과 오만은 결국 대통령 사과로, 국회 청문회와 최초의 특검 수사로,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법무비서관의 경질과 구속으로 이어졌다. 집권 2년 차 20세기의 마지막 해를 허비한 DJ는 “외국에 가면 (정치적) 감이 떨어진다. 그땐 내가 실수했다”며 후회했다는 전설 같은 교훈이 전해진다.

한미일 정상회의를 위해 17일 방미하는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기복을 겪을지 모른다. 나라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북핵 확장억제의 3자 협력, 공급망 강화 등 획기적 성과를 들고 돌아올 윤 대통령의 눈에 국내 정국은 야비하고 패륜적으로 보일 공산도 크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 거대야당이 정부여당의 발목을 잡는 건 사실이지만 정부도 국민 신뢰를 많이 잃었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 이어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국제 망신까지 현 정부 들어 벌어진 대형 사고가 벌써 세 번째다.

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무너진 자유시장경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했다. 대통령은 혼자 숨 가쁠지 몰라도 장관들은, 공무원들은,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선 한가하고 안일하다. 이태원 참사를 겪고도 국민 안전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주무 장관이 문책받지 않아선지 공직 기강은 불과 열 달 만에 한없이 흐물흐물해졌다.

이 정부가 밝힌 국정목표 6개 중 첫 번째가 ‘상식이 회복된 나라’다. 그중 세 번째 ‘국민께 드리는 약속’이 ‘소통하는 대통령, 일 잘하는 정부가 되겠다’였다. 잼버리 주무 부처 장관의 거짓 보고를 연상케 하는 당당하고 뻔뻔한 추진 전략이다.

너무나 비상식적인 이태원 참사 발생 4일 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모든 부처가 안전 주무 부처’라는 각별한 각오로 안전에 근본적 대책을 세워 달라”고 하나 마나 한 주문을 날렸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연설할 때마다 강조하는 ‘자유’는 공공귀족들의 무능할 자유, 무책임할 자유, 이해충돌 무시하고 지대(地代)나 좇는 자유가 된 것이다.

‘대통령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공정과 상식과 법치는 가장 불공정하고 몰상식한 무법천지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윤 대통령 선거캠프 출신이 사장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철근을 빼먹은 ‘순살 아파트’ 명단을 속여 발표하고도 또 설계·감리 용역 6건을 LH 전관업체에 몰아주는 ‘철면피 카르텔’을 드러냈다. 이런 공기관을 감독해야 할 국토교통부 장관, 3월 지자체 정부혁신 종합계획을 발표했던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 정부의 특기인 전임 정권 탓이나 하면서 태연하다.

상상하고 싶진 않지만 이런 정부 아래 한미일 3국이 암만 철통같은 맹약을 맺은들, 한반도 유사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싱크탱크 랜드의 마이클 마자르는 국가를 강하고 위대하게 만드는 힘은 경제적 생산성, 기술적 혁신, 사회적 통합 그리고 국가적 의지에서 나온다고 했다. 특히 엘리트 계층의 공적 마인드가 중요한데 세금으로 꿀이나 빠는 부패하고 나태한 꼴이 대중 앞에 노출되면, 그 사회는 무너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바로 이 짝이다.

이렇게 내년 총선까지 지지부진 갈 순 없다. 이미 차관 개각으로 ‘대통령 직할 체제’를 구축했다지만 결과는 힘 빠진 장관, 해이한 공직사회, 그리고 떠나는 민심뿐이다. 또 대통령 직할 공천으로 국민의힘이 설령 대승을 거둔다 한들, 가장 중요한 법사위는 야당 몫이다. 대통령 뜻대로 의회를 움직여 법을 뚝딱 통과시킬 순 없다는 얘기다.

DJ 때 김광웅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은 “화합은 정치부터, 특히 인사 편중을 극복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통의동 일기’에 썼다. 대통령비서실, 내각의 지역편중을 없애면 대통령 인기는 하루아침에 치솟을 것이라고 했다. “국면 전환용 개각은 없다”가 자랑이 될 순 없다. 대통령 부친도 국민만 바라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총선 승리보다 국민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윤 대통령은 귀국 후 “대통령인 저부터 달라지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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