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포럼] 이재명과 조국의 ‘피해자 코스프레’

원재연 2023. 8. 16.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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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집권 시절에도 자신들이 약자나 피해자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이어 국회까지 장악해 국정을 쥐락펴락하면서도 스스로를 야당과 검찰, 언론 등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에게 당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실과는 거리가 먼 ‘피해자 코스프레’일 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뒤에는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 통보를 받으면 으레 꺼내 드는 레퍼토리가 있다. ‘야당 탄압’, ‘정치 보복’ 주장이다. “검찰이 없는 사실을 조작해 자신을 범죄자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출석하면서도 그랬다.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미 무혐의 처분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없는 사건과 죄를 만들고 조작하는 사법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오늘 검찰에 소환되는 이 대표는 이번에도 자신에 대한 수사를 ‘최악의 국가폭력’이라고 비난했다. 그제는 페이스북에 당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올려 “검찰이 저를 희생 제물로 삼아 정권의 무능을 감추고 민심 이반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검찰이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얘기를 되풀이한 것이다. 그는 A4 5장 분량의 검찰 진술서 요약본도 공개하면서 “당원 동지들께서 검찰의 무도함을 널리 알려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 정부와 검찰에 핍박받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여론전에 나선 셈이다.
원재연 논설위원
이 대표가 받는 혐의는 지방자치단체장 시절 개인 비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민주당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대부분 문재인정부에서 불거진 일들이다. 자신이 윤석열정부 검찰에 탄압받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부와 검찰이 없는 죄를 만들고 조작해 168석 거대 야당 대표를 제멋대로 소환하고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얘기다. 주변 인물이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은 마당에 이 대표 수사는 당연하고도 필요한 절차다. 그러지 않는다면 검찰의 직무유기다.

변호사인 이 대표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정치 보복’ 구호를 외치는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정치적으로 타개하려는 생각일 것이다. 비리 혐의라는 본질을 흐리고 자신을 억울한 피해자로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가 자신의 혐의를 구체적으로 반박하기보다 정치적이고 정서에 호소하는 수사(修辭)로 일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지자들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켜 이들을 결집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자신에게 불리하면 피해자인 체하는 행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그는 딸 조민씨가 입시 비리 혐의로 기소되자 “차라리 나를 남산이나 남영동에 끌고 가 고문하라”고 반발했다. 남산은 옛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 남영동은 치안본부 대공분실을 가리킨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남산과 남영동에서 고초를 겪은 사람들과 사적인 파렴치 범죄로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자신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한 셈이다. 아직도 진정으로 반성하는 자세는 보이지 않고 자기 가족 입시 비리 수사를 정권의 탄압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이러니 “위조 잡범이 아주 그냥 열사 나셨다. 감성팔이 하고 있다”(최서원씨 딸 정유라씨)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이 대표는 “1원 한 푼 사익을 취한 것이 없고, 한 점 부끄러움도 없으니 소환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했다. 이 대표가 떳떳하다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멈추고 검찰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소명하면 된다. 이 대표 혐의가 범죄인지 여부는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증거에 의해 가려져야 마땅하다. 법리에 따라 기소 여부를 결정하고, 유무죄는 법정에서 다투는 게 사법 절차다. 조 전 장관도 마찬가지다. 사법에 정치를 개입시켜 진영 대결로 몰아가는 구태를 버릴 때가 됐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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