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가리봉! 또 다시 여름

2023. 8. 16.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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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은 하기 싫지만 지난여름 거론했던 가리봉의 여름을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가리봉에 없는 게 있다.

나무가 만들어 주는 초록 그늘도 빌딩이 만들어 주는 콘크리트 그늘도 가리봉엔 없다.

가리봉에선 그들이 한 치의 폭염도 통제할 수 없는 오래된 쪽방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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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탕은 하기 싫지만 지난여름 거론했던 가리봉의 여름을 다시 이야기해야겠다. 가리봉에 없는 게 있다. 그늘이다. 나무가 만들어 주는 초록 그늘도 빌딩이 만들어 주는 콘크리트 그늘도 가리봉엔 없다. 재난 수준의 폭염이 직접적이다. 행인이야 양산을 치켜들고 황급히 통과하면 그만이지만 취약한 주택 속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거주민에게는 곤욕이다. 후끈한 바람만 되뇌는 선풍기로는 대처 불가다.
센터 1층 로비 에어컨 아래 어르신들이 더위를 피해 모인다. 출근할 때마다 한쪽에 말 없이 앉아 사람을 놀래키던 아저씨도 이제 종일 계신다. 모두 더위를 피할 데가 있어 다행이다. 다행인가? 생활인의 일과가 단지 더위를 피하자고 공공건물 로비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다행인가? 그래도 이 더위에 다행인가?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지난달 말에 움틈학교가 방학을 했다. 한 학기 동안 낯선 한국어로 공부하느라 고생했다고 치하하고 며칠 푹 쉬었다가 방학 특강에서 보자고 인사를 했다. 아이들이 다음 날 다시 학교에 왔다. 교실 문을 열어 달란다. 매일 오는 학교를 짧은 방학에도 빼먹지 않고 오니 흐뭇하다. 흐뭇할 일인가? 방학이라 누릴 수 있는 건 ‘휴대전화 프리’인데 그마저도 덥고 좁은 주거 환경을 감내해야 가능하다. 아이들이 쉴 수 없는 집에 사는 게 흐뭇한 일인가? 그래도 학교로 왔으니 흐뭇한가?

내가 폭염에도 버틸 수 있는 건 냉방이 되는 사무실이 있어서다. 더 결정적인 건 단열이 되는 아파트 건물과 전기요금과 실외기 열기가 두려울 때마다 단추를 누를 수 있는 에어컨 리모컨 덕이다. 실내 더위를 어느 정도 통제해 가면서 변함없이 먹고 자고 일을 하고 가을을 기다리며 여름을 나고 있다.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을 외국인 주민(外國人 住民)이라 부른다. 외국인이지만 체류하는 동안은 ‘살고 있는 백성’이다. 그뿐인가, 한국에 거주하려면 국내거소신고증이라는 것도 발급받는다. 거소증(居所證), 여기에 살고 있다는 증서이다.

가리봉에선 그들이 한 치의 폭염도 통제할 수 없는 오래된 쪽방에 산다. 혈혈단신 혼자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은 두 치 정도는 통제할 수 있는 근처 주택에 산다. 그래도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낮에 쉴 수 있는 곳은 못 된다.

외국인이라 주거에 대한 권리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고 치자. 그래도 사는 동안 ‘주민’으로서 폭염으로부터 안전해야 하지 않겠나. 내일의 뜨거운 노동을 위해 충전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나. 가리봉의 건물주들에게 호소해야 하나? 수요자의 선택이니 눈을 감으라고?

기후위기에 제일 적게 관여한 사람들이 제일 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역설을 목격할 때마다 자본의 논리라며 눈감아 왔다. 그런데 가리봉은, 이 뜨거운 가리봉은 너무 가까이에 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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