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엘리자베스 홈스의 꿈
혈액 배양 검사 하루면 가능
치매 진단 혈액 키트도 개발
조직검사 대체할 날 곧 올것
필자가 진료하는 림프종, 다발골수종, 만성림프구백혈병은 대표적인 림프구유래 혈액암이다. 여느 환자들이 그렇듯 암 환자들이 치료 중 발열로 내원하면 긴장하게 된다. 면역이 감소한 환자의 세균 감염은 적지 않은 경우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한 패혈증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따라서 발열로 내원하는 경우 원인균을 찾기 위해 각종 검사를 한다. 특히 혈액배양 검사는 가장 중요한 검사인데, 통상 5일 정도는 지나야 충분히 세균이 자라서 집락군의 형태학적인 차이를 보거나 각 세균의 생리, 생화학적 특징을 감별할 수 있다.
앞에 언급한 클렙시엘라혈증 환자의 경우는 적혈구침강속도, C반응단백(CRP) 등을 측정하여 염증의 정도를 모니터할 수 있다. 심장의 상태는 심전도나 심초음파,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시행하면 정확하지만 응급실을 내원한 환자의 심부전 여부를 신속히 가리기 위해 BNP, 심근경색을 확인하기 위해 심근단백 중 하나인 트로포닌 등을 측정할 수 있다. 물론 갑상선 및 부신 기능 내분비학 이상도 혈액검사를 통해서 확인한다. 림프종과 다발골수종에서는 젖산탈수소효소(LDH)와 베타2마이크로글로불린이라는 세포막 단백도 예후와 관련하여 참고하게 된다. 다발골수종은 항체를 만드는 세포인 형질세포로부터 유래한 혈액암으로 한 가지 형태의 항체(M단백)를 분비하므로 이를 혈액 또는 소변 검사를 통해서 확인해 질병의 진행 상태를 파악한다.
어디 이뿐이랴. 아직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유세포분석 또는 차세대염기서열분석법을 이용해 치료 후 완전 관해로 들어간 환자의 미세잔존질환 여부를 확인할 수도 있다. 미세잔존질환 검사에서 음성인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훨씬 좋은 경과를 보인다. 마찬가지로 림프종 환자가 항암요법 후 관해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암으로부터 유래한 혈액 내 암 DNA가 감소하거나 없어지게 되는데 통상 재발 수개월 전에 먼저 상승하기 때문에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재발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시행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이나 MRI를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원한 만성림프구백혈병 환자의 예후를 알기 위해 항체유전자의 돌연변이 유전자 검사 처방을 했다. 물론 혈액검사인데 재미난 것은 이 경우 돌연변이가 있어야 예후가 좋다는 것이다. 폐암 환자의 암 관련 유전정보는 암조직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암은 진화하는데 전이 질환의 조직검사가 어려울 경우에도 암으로부터 유래한 미량의 혈중 DNA 분석이 도움이 된다.
구글에 ‘미국의 희대 사기 사건’이라고 검색을 하니 엘리자베스 홈스 관련 기사가 가장 상단에 뜬다. 여자 스티브 잡스라고 불리던 홈스는 스탠퍼드대학을 중퇴하고 열아홉 살에 테라노스라는 바이오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혈액 한 방울로 약 250개의 질환을 진단할 수 있다며 거액의 투자를 받고 한때 기업가치가 10조원을 넘었으나 실제 진단이 가능했던 질환은 불과 16개로 2021년 사기 판결을 받았다. 4∼5년 전 누군가 조직검사를 대체할 수 있는 혈액검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해 내심 의구심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 바이오 기업이 치매 조기 진단 혈액검사 키트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홈스는 “우리는 언젠가 그 많은 질병을 검사할 기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발언해 공분을 샀다고 하는데, 사기꾼의 망발이었지만 검사법의 발전 속도를 보면 홈스가 꿈꾸던 그날이 그리 머지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덕현 서울아산병원 카티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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