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군 병사, 인종차별·학대에 월북”
한 달 만에 공식 입장 발표
대북 인권 공세 반박 의도
미 “북한 주장 검증 못 해”
북한이 지난달 월북한 미군 트래비스 킹 이병이 인종차별과 학대에 대한 불만 때문에 북한으로 넘어왔다고 주장했다. 킹 이병에 대한 북한의 공식 입장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권 문제가 있는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인권회의 소집을 추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6일 ‘미군 병사 트래비스 킹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와 관련한 보도’를 발표했다. 킹 이병이 지난달 18일 판문점에서 무단으로 월북한 지 한 달 만에 북한 당국의 첫 입장이 나온 것이다.
통신은 “해당 기관에서 조사한 데 의하면 킹은 자기가 공화국 영내에 불법 침입한 사실을 인정했다”며 “킹은 미군 내에서의 비인간적인 학대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올 결심을 하였다고 자백하였다”고 밝혔다. 통신은 “킹은 또한 불평등한 미국 사회에 환멸을 느꼈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나 제3국에 망명할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폭행 등으로 두 달 가까이 구금됐던 킹은 지난달 17일 추가 징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달아난 뒤 다음날 판문점 견학에 참여하던 중 무단 월북했다.
미국은 유엔군사령부와 북한 측을 잇는 직통전화(핑크폰) 등으로 북측과 연락을 시도했지만 유의미한 소통과 정보 교환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이 킹 이병 월북 한 달 만에 관련 내용을 발표한 것은 최근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보리 공개회의 소집을 요구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킹 이병에 대한 미군의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미국의 북한인권 문제 제기가 부당하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 요청대로 안보리서 북한인권회의가 열리면 2017년 이후 약 6년 만이다.
북한이 향후 조사 결과를 추가 발표하는 방식 등으로 주요 국면마다 킹 이병 월북 사건을 이용하려 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미국의 대북 인권공세에 대한 반박거리로 킹 이병 문제를 지속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킹 이병 문제를 이용해 내년 미국 대선 국면에 영향을 미치려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마틴 메이너스 미 국방부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우리는 (북한의) 이런 주장을 검증할 수 없다”며 “국방부의 최우선 순위는 킹 이병을 미국의 집으로 데려오는 것이며, 이를 위해 모든 가능한 통로를 활용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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