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대통령의 아버지
20세기 초 미국 동부 재력가로 주영국 대사를 지낸 조셉 패트릭 케네디는 장남 조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정치가로 대성하길 바라며 “최고 중의 최고가 되라”고 가르쳤다. 조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장남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그가 차남인 존에게 말했다. “형이 없으니 이제 하원의원 입후보는 네 몫이다.” 형의 대타로 정계에 입문한 JFK는 아버지가 깔아 놓은 정·재계 인맥을 타고 1960년 대선에서 압승했다. 6대 존 퀸시 애덤스, 43대 조지 W 부시도 대통령이었던 아버지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정치인 수업을 받고 부자(父子) 대통령이 됐다.
▶미국의 모든 대통령이 아버지 도움을 받은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은 유복자로 태어나 주정뱅이 계부 밑에서 자랐다. 새아버지가 술에 취해 어머니와 이부(異父) 동생을 때릴 때 클린턴이 이들을 보호하며 컸다.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오바마는 케냐의 해외 장학생으로 뽑혀 하와이에 유학 온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바마가 3살 때 부모가 이혼, 아버지가 케냐로 돌아간 후 인연이 끊겼다.
▶최진 대통령 리더십 연구원장은 한국 대통령 중 박정희·전두환·김대중은 어머니 못지않게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위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아버지를 반드시 앞지르겠다’는 의지를 품는데 박정희·김대중이 이에 해당한다고 봤다. 반대로 아버지가 무기력했을 경우엔 노무현·이명박처럼 아버지의 존재를 은폐하려는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고 했다.
▶역대 한국 대통령 아버지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김영삼 전 대통령 부친 김홍조옹일 것이다. 거제도의 재력가였던 그는 YS가 20대에 정치를 시작한 후,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옹이 서울로 올려보낸 ‘YS 멸치’를 받아야 ‘YS 사람’으로 인정받던 때도 있었다. “영샘이는 서울에서 정치 잘하고, 내는 거제에서 사업하면 된다”며 아들의 집권 중 한 번도 청와대를 찾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버지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는 최고의 인생 멘토였다. 아버지가 선물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 가치관을 확고히 했다. 미래 지향적 한일 협력을 신념화한 것도 일본에서 유학한 윤 교수 덕분이었다. 15일 별세한 윤 교수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잘 자라줘서 고맙다”였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눈감을 때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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