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뷔페 즐기듯…“가볍게 떠납시다, 미술관으로”

기자 2023. 8. 1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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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경력 도슨트 김찬용씨가 미리 전하는 2023 미술주간
내달 1일 막 오르는 최대 미술축제
양평 구하우스·제주 본태박물관 등
전국 22개 코스 전시 해설 투어 운영
미술 잘 몰라도 누구나 빠져드는 매력
서울 소격동서 현대미술 맛보기 추천

전국 최대 규모 미술축제 ‘2023 미술주간’이 오는 9월1일부터 11일까지 펼쳐진다. 관람자들은 미술주간을 통해 전국 290여개 미술관·갤러리·아트페어·비영리 전시기관의 다채로운 혜택과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2023 미술주간은 문화체육관광부·관광공사가 주최하는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사업에서 100대 K이벤트에 오른 만큼 풍성한 즐길 거리를 기대해봄 직하다. 미술주간의 핵심인 전시 해설 투어 ‘미술여행’ 참여 신청은 네이버 예약에서 할 수 있다.

김찬용 도슨트는 가벼운 복장, 가벼운 신발, 가벼운 언어로 2023 미술주간을 맘껏 즐겨보기를 권했다. 김 도슨트는 미술관을 찾아 좋은 작품을 보며 감동하는 것도 좋지만 미술관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나를 좋아하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16년간 100개 이상 미술 전시를 맡아온 해설사가 있다. 김찬용 도슨트다. 김 도슨트는 전시 해설사를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관례에 반해 전업 도슨트를 자처하며 미술계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특유의 흡인력과 전달력으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끈 그는 수많은 관람자를 전시 공간에 불러 모으는 전도사로 거듭났다.

그가 스타 도슨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미술에 대한 지독한 애정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술대학 진학을 목표 삼았던 그는 작가가 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절감했다. 그럼에도 미술계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그가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것이 바로 도슨트였다. 그는 자신의 해설을 들은 관람자들에게 미술과 사랑에 빠지는 경험을 선사해왔다. ‘미술에 빠진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미술주간을 소개하는 데 김 도슨트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전시 해설 현장에서 미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체감하는가.

“10여년 전만 해도 대형 미술관을 방문하는 주요 관람자는 중장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의 발달로 인증샷 문화가 확장되며 젊은 세대 수요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대형 미술관뿐 아니라 소규모 화랑을 찾는 경우도 많아졌죠. 관람 형태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이전에는 연인과 데이트를 하는 등 짝을 이뤄 오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혼자 전시를 관람하는 젊은 미술 애호가도 많이 보여요. 감염병 팬데믹 종료 선언 이후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젊은 세대뿐 아니라 전 연령층에서 많은 분이 미술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적으로 한국 미술이 주목받고 있다. 한국 미술만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국은 유행하는 것, 새로운 것에 굉장히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회입니다. 작가들 역시 이러한 경향을 작품에 반영해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 현대미술 작품은 작가의 출신지나 배경을 유추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죠.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시대에 가장 적합한 미술을 보여주는 나라가 한국이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이 세계 미술계의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일 테고요.”

-2023 미술주간에 외국인 관람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내년 5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되는 ‘백 투 더 퓨처: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팝아트를 연상하게 하는 이동기 작가, 개념적 작품을 선보이는 이용백 작가,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오가는 작품을 보여주는 최정화 작가까지 마치 뷔페 즐기듯 한국 현대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전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소마미술관에서 개최한 ‘다시 보다: 한국근현대미술전’도 추천합니다. 20세기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을 보여주는 이 전시에서는 이중섭, 천경자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했던 격변의 시대, 한국 역사의 아픔과 고민을 녹인 우리나라의 독특한 회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관람자가 이들 전시를 통해 한국의 이국적 문화와 예술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도슨트와 함께 전국 7개 권역 미술관을 여행하는 ‘미술여행’은 미술주간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총 22개 코스로 이뤄진 ‘미술여행’ 중 추천하고 싶은 전시가 있다면.

“금호미술관·학고재·아트선재센터가 있는 서울 소격동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각 미술관 관점에서 선별한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해 매력적인 코스입니다. 여행하듯 즐길 수 있는 코스도 있습니다. 경기 양평에 위치한 구하우스인데요. 한국 1세대 그래픽디자이너인 구정순 관장이 수집한 500여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죠. 빛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관도 있어 새로운 시공간에 온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주 미술여행 코스로 선정한 본태박물관에서는 보자마자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하는 구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를 감상할 수 있는데요. 미술을 잘 모르더라도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는 작품이라 코스 체험을 추천합니다.”

도슨트 필요 없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나만의 시선 찾는 데 도움 받으면 좋아
올해 일부 미술관 수어 도슨트도 마련

-관람자들이 도슨트 해설을 들으며 전시를 감상하는 것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저는 도슨트가 사라진 전시 관람 현장을 꿈꿉니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가 늘어나길 바란다는 뜻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 4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업무량이 과다한 국민 특성상 많은 시간을 투자해 미술을 공부하고 고유한 관점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죠. 이 때문에 전시 및 작품 관련 정보를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라잡이가 필요합니다. 본인 성향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도슨트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발견한 도슨트와 몇 차례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자신만의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될 테고, 이것이 곧 도슨트와 전시를 감상하는 것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최근 많은 미술관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다양한 배리어프리 전시 및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올해 독일 뮌헨에 있는 현대미술관 알테 피나코테크에 다녀왔습니다.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전시 공간에서 관람자들이 직접 작품을 빛에 비춰볼 수 있도록 배려해둔 것이 좋았습니다. 시각뿐 아니라 촉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관람할 수 있는 전시라 느꼈어요. 도쿄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로댕 작품을 석고 조형물로 구현해 시각장애인이 직접 만질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국내 국공립미술관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전시가 많아져서 다행입니다. 특히 이번 미술주간은 장애인의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환기미술관, 안양문화예술재단, 경남·전남 도립미술관에서 수어 도슨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자유롭게 미술을 즐길 수 있는 미술축제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미술주간을 즐겁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볍게’라는 말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전시를 관람하는 건 생각보다 발품과 체력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가벼운 복장에 편한 신발이 필요합니다. 복장 말고 가벼워야 할 것이 또 있는데요. 바로 마음가짐입니다. 거창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미술이 즐거운 것이 아닌 부담스러운 것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벼워야 할 것은 언어입니다. 제가 추상주의 혁명을 일으킨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의 전시 도슨트로 근무했을 때 일입니다. 젊은 부부와 서너 살쯤 돼 보이는 딸이 작품을 보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그 모습이 예뻐 그들 뒤에 서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어봤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딸에게 한 말이 의외였는데요. “이 작품이 500억원이래. 우리 딸이 더 잘 그리겠는데”하며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작품에 심오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편하게 감상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깊이가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찾아가 작품당 3초씩 머물러보길
어느 순간에 작품이 나를 끌어당길 것

-방문한 전시장에서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최초의 결심이 허영과 과시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보며 감동하기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나를 좋아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는 거죠. 작품당 3초씩 머물러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방대한 지식을 토대로 작품에 접근하면 감상하기도 전에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요. 짧은 시간 작품을 감상하고 이동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오래 머무르는 작품이 생길 겁니다. 작품 속 상징과 개념을 이해하고 싶다든가, 색채가 왠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긴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렇게 마주한 작품이 자신의 본능적 시각예술 취향을 대변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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