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꼿더우
배우 문소리 말고 진짜 문소리. 아침이면 동네에 문들 여는 소리가 ‘철컹 덜컹 찰가닥 스르륵’ 들려. 휴가철이라 객지 식구들이 집집들 찼어. 누군 캠핑카를 몰고와설랑 냇가에서 야영. 닭백숙집 성님은 휜 허리를 펴더니 한철 대목 장사에 기운을 내더라.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산골 아이’로 살고픈데, 나도 며칠 손님치레로 정신없었다. 물 좋고 산 좋은 관광지에 사는 죗값을 치르는 시기.
여름마다 강변가요제가 즐거운 구경이었지. ‘이름 없는 새’란 곡으로 대상을 받은 손현희란 가수가 있다. 무담시(괜히) 좋아하길 꽤 오래. 앨범에 담긴 ‘산골 아이’는 국악풍 정겨운 멜로디. “혼자서 온종일 기다림 속에 있었나. 놀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산골 아이. 울어도 웃어도 빈 하늘만…. 마을 간 엄마는 오질 않네.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올 그 외딴길로 풀잎만 입에 물고 달려가는 산골 아이….”
휴가철 외지인들 다녀가고 여기저기 빈 병이 나뒹굴어. 사지 멀쩡한 거지에게 목사가 따져 물었지. “왜 하필 구걸을 하시나요?” “술을 마시고 싶어서 그렇소.” “술은 끊으셔야죠.” 거지가 목사를 째려보더니만 “속 모르는 소리 그만하슈. 술에 취해야 그나마 구걸할 용기가 생기는 댑슈.” 아, 뒷골 땅겨.
혹시나 깨질라 병들을 따로 모아 치운다. 아이들이 그랬는지 송사리 애갱이들을 잡아 빈 병에 넣기도 했네. 붙잡히고 버려지고 남겨진 아무개들 사는 산촌. 물방개나 물땡땡이, 소금쟁이가 지키는 시냇가 웅덩이. 시원한 열무김치가 지키는 밥상이 있고, 염소가 지키는 짙은 그늘과 푸른 언덕. 배 아플 때 먹는 정로환처럼 뿌려놓은 염소똥을 밟을라.
사나운 멧뒤아지(멧돼지)를 피하면서 포장길로 접어드니 저녁이라도 훅훅 찐다. 요쪽말로 꼿더우, 한더위 무더위가 꼿꼿함을 부디 꺾고, 어서 선선한 갈바람이 골목마다 불었으면 좋겠어.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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