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살인예고’는 장난이 아니다

차준철 기자 2023. 8. 1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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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무장한 경찰특공대원들이 지난 6일 ‘살인예고’ 장소 중 하나인 서울 강남역에서 순찰하며 이동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1991년 10월19일 서울 여의도광장. 날이 화창해 산책 나온 시민들이 북적였다. 그때 도로 저편에서 승용차 한 대가 광장 안으로 돌진했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해 비명을 질렀고,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쓰러졌다. 어린이 2명 사망에 부상자 21명. 범인은 당시 21세 김용제였다. 양말 공장에서 해고된 뒤 사회에 앙심을 품고 범행했다. “어차피 죽으려고 했으니까, 그냥 무조건 밀어붙였다”는 그의 말이 섬뜩했다. 불특정다수를 무차별로 가해하는 범죄가 일상생활에 언제든 닥칠 수 있음을 알린 충격 사건이었다.

차준철 논설위원

2008년 2월에는 70대 노인이 홧김에 ‘국보 1호’ 숭례문에 불을 질렀다. 정부가 진정을 받아주지 않아 억울하다는 게 이유였다. 삐뚤어진 울분을 참지 못해 앞뒤 가리지 않고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자제와 양보 따위는 안중에 없이 분노와 냉소를 눈앞의 위력으로만 표출하는 식으로 자기주장을 내세운 행태였다. 15년 전인 그때도, 악성 댓글이 판치는 인터넷 문화 탓에 ‘안티 정서’가 만연하고 나만 억울할 수 없다는 강박이 심해진 점 등이 주요한 원인으로 꼽혔다.

올여름에는 서울 신림동, 분당 서현역에서 2주 사이에 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이 잇따라 시민들을 일상의 불안에 몰아넣었다. 신림동 사건 피의자 조선(33)은 “나는 불행하게 사는데,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고 서현역 사건 피의자 최원종(22)은 “나를 해하려는 스토킹 집단을 세상에 알리려고 범행했다”고 말했다. 둘 다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정 등으로 좌절을 겪으며 반사회적 분노를 쌓다가 거리낌 없이 표출한 것이다.

무차별 살상 범죄는 그동안 때때로, 지속적으로 일어났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는 최악의 방화 테러였다. 근래에는 2018년 안인득의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의 악몽이 남아 있다. 올 3월에도 죽전역을 지나던 전동차 안에서 3명이 다치는 칼부림 사건이 났다.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불리는 무차별 범죄가 개인 일탈이 아닌 사회 병리 현상으로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정부당국의 제대로 된 조사·통계도 없는 나라에서 끔찍한 사건들이 이어진 것이다. 엄벌에만 치우치는 단기 처방이 아니라 반사회적 분노를 촉발하는 부조리·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 갈등을 치유할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

그런데 흉기난동 사건 못지않게 경악스러운 일은 온라인에서 살인 등 흉악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유행처럼, 놀이처럼 번지고 있는 현상이다. 경찰청은 지난달 21일 신림동 사건 이후 이달 16일까지 ‘살인예고’ 글 383건을 확인해 전국에서 작성자 16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7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지난 6일까지 65명이 검거되고 구속자가 잇따랐는데도 줄기는커녕 계속 늘고 있다. 최근에는 총기 난사·공항 테러·어린이 성폭행·대통령 살해까지 운운하는 글들이 나돌았다. 추적을 피하려고 작성자 개인정보를 감추는 방법도 쓰였다. 경찰에 붙잡힌 이들의 대다수가 “장난삼아” “관심받고 싶어서” “홧김에” 썼다고 하지만 공권력을 비웃고 공동체를 무시하는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다.

온라인 내의 이런 악성 사용자들을 단순히 오프라인의 ‘찌질이’ 혹은 대리만족을 위해 사는 ‘관심 종자’쯤으로 얕잡아 봐선 안 된다. 그러면 일부 몰지각한 유저가 관심을 끌고 분란을 일으키고자 자극적인 글을 올리는, 속칭 ‘어그로’를 끄는 데 불과한 것으로 간주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살인예고 글이 주로 유통되는 디시인사이드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속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그들이 범죄인 줄 알면서도 ‘관심받기’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커뮤니티는 19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인터넷·스마트폰 시대를 거쳐 온 꽤 오랜 온라인 문화다. 모든 사건이 닉네임·익명 아래 텍스트로 소통되는 공간이다. 자기 의견을 만들어내는 생산자, 이를 퍼나르는 전파자, 부지런히 반응하는 응답자들이 얽혀 있는 공간이다. 적극 사용자들은 오프라인에 실망하고 온라인은 진실이라는 생각으로 진입했기에 그 안에서 제 목소리를 과시하고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속성 때문에 갈수록 과도하게 자극적인 내용들이 경쟁적으로 나왔고 자율 규제를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공격·폭력성은 물론이고 혐오와 강력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는 커뮤니티의 실태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반사회성을 공유·유포하는 온라인 공간은 필요 없다. ‘살인예고’는 장난이 아닌 반사회적 범죄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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